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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봄이 오는 길

by 눈부신햇살* 2023. 2. 27.

금요일 시골 시댁에 들러 어머니를 모시고 대전의 병원에 다녀왔다.

그새 많이 회복하신 어머니는 이제 괜찮아지시니 병원 다니는 것이 귀찮기만 하시단다.

가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채혈검사 결과도 한참 기다려야 해서

병원 한 번 다녀오는데 거의 반나절이 소요되어 여러모로 그런 생각이 드시나 보다.

 

다행스럽게 병원 채혈검사 결과도 좋아서 이제 한 달에 한 번 오셔도 좋다고 하자

아예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네네, 어머니, 저희도 그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논산 시내의 계속 다니고 있는 병원에 들러 기존에 드시고 계시던

한 달 치 약을 처방받았는데 조제해 주는 약국의 약사가 나더러 엄마가 건강하신 편이란다.

- 아, 저희 어머니요? 건강하신 편인가요?

아마도 대전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과 중복되지 않게 처방받다 보니

약 개수가 많지 않아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미용실에 들러 어머니 파마를 하고 있는데 조카 졸업식이 끝났다며 시동생이 왔다.

가족들과 함께 있지, 뭐 하러 오느냐고 하니 함께 점심 먹었단다.

이래서 효자 남편을 둔 며느리는 고달파. 

 

 

 

 

혼자서 무료하고 적적하게 시간을 보내시는 어머니의 활동적인 삶을 위해 시동생이 자전거 연습을 시켰다.

예상보다 잘 타신 어머니는 용기를 얻어 그다음 날부터 공회당으로 놀러 가셨다. 

 

토요일 오전에 어머니 목욕(혼자서는 넘어질까 무서워 위험하므로 하시지 말라고 한다)을 시켜드렸더니

오랜만에 공회당에 다시 나가게 된 어머님을 위해 동네 어르신들을 대접하자고 한다.

거창하게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아니고, 공회당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달시켜드리자고 했는데

어르신 몇 분은 사정상 빠지게 되고 여섯 분이 시골집으로 직접 오셨다.

 

어르신 유모차보행기를 한 대씩 몰고 오셔서 나란히 세워진 것을 보니 슬그머니 웃음도 났다.

 

어머니 것은 대충 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한 분은 걷는 것보다 이동이 수월한 자전거를 타고 오시고,

그중 젊은 편에 속하는 두 분은 그냥 걸어오셨다.

 

많이 괜찮아지셨다고는 하지만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어머니의 행동반경 때문에

밑반찬을 만들어서 큰 통에 한꺼번에 담지 않고 작은 통에 소분해서 갖다 드렸다.

진미채볶음과 연근조림, 시골에서 수확한 땅콩으로 만든 땅콩조림(왜 먹지 않고 만들어 왔냐고 하신다)과

고춧잎 넣고 무말랭이 무치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나박김치를 담그고, 역시나 좋아하시는 누룽지는 그냥 샀다.

그동안 어머니가 드시는 약 때문에 피해야 할 해조류와 비타민K가 들어 있는 녹색식물은 금기음식 재료라서

그것들을 피해서 만들어 왔는데 이제는 가리지 않고 드셔도 된다고 한다.

 

옆집 어르신이 무수꼬다리는 누가 무쳤냐고 맛있다고 하셔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씀드린다.

- 저예요.ㅎㅎㅎㅎ

시골에서는 중국집 음식이 별미인지 참 맛있게들 드셔서 흐뭇했다.

식후 커피도 드시고, 과일도 드시며 담소를 나누는 동안

남편과 시동생과 나는 밖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새싹이 나오고 있는 국화 무더기의 지난해 꽃대도 베어주고,

나무 밑에 수북한 낙엽들도 긁어모아 불태우고,

불두화와 라일락, 개나리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들도 창고 옆으로 날라다 쌓고,

창고 옆 감나무들을 사다리 놓고 올라가 시동생이 전자톱으로 가지치기하면 밑에서 기다렸다가 나르곤 했다.

 

어느새 시동생은 농부가 다 되었네.

주중에 틈틈이 유튜브로 농사 공부를 하고 시골에 와서 실습하는 셈이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나서 월요일부터 근무하려면 몸살 나지 않느냐고 했더니 좀 피곤하지만 견딜만하단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반나절 일하고 나니 어찌나 고되던지

집에 들어와 잠깐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남편 가라사대, 나이는 무시 못해. 쟤가 나보다 아홉 살이나 젊어......🤣

게다가 울어머니 몸이 괜찮아지시니 또 농사 지을 계획을 늘어놓으시는데

아이고, 맙소사다!

 

 

 

 

집으로 돌아와 일요일엔 우리의 휴식처인 신정호에 갔다. 

흐린 날에 이런 풍경이었던 호수는

 

맑은 날엔 이런 옷으로 갈아입고 맑고 밝은 햇살 아래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났다.

 

오리들도 호수에 둥둥 떠서 맑은 날을 즐긴다.

 

새봄맞이로 무지막지하게 전지를 당한 오른쪽 모과나무를 보자니

무지막지하게 가지가 잘려 나간 시골집의 감나무가 떠올랐다.

 

물결은 잔잔하고, 물 위에 비친 햇살은 반짝거리며 눈이 부시게 빛나고,

 

집안에서는 스노우사파이어가 꽃같이 예뻐 볼 때마다 소박한 기쁨을 주고,

꽃기린은 사시사철 꽃을 달고 기쁨을 준다.

이제 긴기아난과 군자란이 꽃대를 밀어 올렸으니

머잖아 곧 환한 봄날의 기쁨을 전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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