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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시골집에서 3박 4일

by 눈부신햇살* 2022. 12. 13.

12월 6일

 

열흘간 입원하신 어머님이 답답해서 못 있겠다 하셔서 조금 당겨 퇴원하셨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 비교적 괜찮은 상태라고 하지만

뇌졸중은 어머니를 무기력하고  활동하기 불편하게 만들어서

보호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하필이면 간병인이 코로나에 걸려서

마지막 나흘간은 막내아들인 시동생이 병간호를 하게 되었고,

퇴원하시고 나서는 첫 번째로 내가 나흘간의 당번이 되었다.

그 후로 짧게 길게 번갈아가며 각자 시간 되는 대로 작은 시누이, 둘째 아주버님, 동서,

그다음에 다시 내 순번이 되어 목요일이면 또 내려가 봐야 한다.

 

오전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뒷내 둑방길을 걷는다.

 

곱게 빗은 단발머리 같은 억새.

 

붉은 찔레 열매,

 

노란 담벼락, 눈을 껌벅이며 대문 앞에 앉아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 한 마리.

 

동네에 딸린 작은 농협지소의 가게에서 계란 10개짜리와 작은 미역 한 봉지를 사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집 근처까지 왔으나 걸음걸이 수가 너무 적길래 

장 본 물건을 들마루에 올려놓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옆동네에 갔더니 낯선 이가 왔다고 개들은 왈왈 멍멍 동네가 떠나가게 짖어대었다.

딸기로 유명한 동네는 버섯으로도 유명한가 보다.

 

우리 집 아이들 어릴 적 놀이터였던 폐교가 된 학교 앞에도 갔다가,

 

 

 

 

 

 

어머니 약을 챙겨드리며 열한 개나 드셔야 된다고 놀랐더니 문병 오신 동네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

우리 나이 되면 누구나 그쯤은 먹어요.

 

나흘 머무는 동안, 목욕 두 번 시켜드리고, 끼니마다 밥 차려 드리고, 말벗 해드리고

별 것 없는 일상이었는데도 꿈쩍 않던 몸무게가 그새 2킬로 빠졌다.

 

 


 

12월 8일

 

 

길냥이가 많더라.

 

퇴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열심히 운동해서 얼른 회복하라는 자식들의 성화에 용기를 낸 어머님이 뒷내 둑방까지 산책을 가자고 하셨다.

그러나 마음만 앞섰을 뿐 몸은 따라주지 않아서 그 짧은 거리에서 몇 번이나 쉬더니

끝내는 중도 포기하여 새삼스럽게 건강의 소중함을 내게 일깨워 주었다.

무쇠처럼 강인했던 어머니,

힘도 세서 무거운 물건도 나를 제치고 번쩍번쩍 들어 탄성을 지르게 하던 어머니,

누구보다도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다는 어머니인데

뇌졸중은 사람을 자꾸 약하게 만들어 어머니의 인상까지 변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머니의 사태는 더 심각한 것이고,

금요일에 작은 시누이가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갔더니 추운 겨울날의 산책은 삼가라고 했단다.

너무도 힘들게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서 주섬주섬 지갑을 찾아 5만 원권 두 장을 내게 주셨다.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어 거부하다가 이내 감사합니다 하고 받고서

나중에 어머니 앞에서 남편에게 자랑했다.

- 나, 어머니께 용돈 받았다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공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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