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며칠간 동분서주했다.
설 전 일주일은 대청소를 하느라고 진이 빠졌다.
청소를 하겠다고 달려들어보니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묵은 때들이
어찌나 잘 보이던지 닦고, 밀고, 쓸어내느라고 하루가 다 가곤 했다.
이곳 아산에서 이사하기 전에는 청소업체에 청소를 맡겼는데
비용도 제법 세고, 아침 7시에 와서 저녁 8시 넘어서까지 청소를 하길래,
그것도 네 명이 와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길래 도대체 그렇게 까지 오래 걸려
청소할 일인가 싶은 마음이 없잖아 들며 성의에 조금 감동하기도 했었다.
이참에 내가 청소해보니 그 일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하루에 한 곳 밖에 청소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창틀의 시커먼 먼지, 유리창 청소(유리창이 왜 그렇게 많은지...), 방충망 청소, 욕실 청소, 주방 청소......
가장 힘들었던 곳이 주방 쪽이었다.
냉장고 청소에 주방 수납장 청소를 하다 보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넣어두었던
내 혼수용품에는 누런 묵은 때들이 생겨나서 모조리 꺼내어 다시 설거지하고 정리했다.
누런 묵은 때들을 벗겨낼 때 가장 유용한 것은 강력 세제인데 그 세제 냄새 맡기도 힘들었다.
마스크를 쓰자니 거추장스러워서 벗었다 썼다의 무한반복.
청소하고 돌아서서 반짝이는 살림살이들을 바라보자면
어찌나 흐뭇하고 개운한지 퍽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청소에 몰두할 때는 그렇게까지 힘든 줄 모르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녹초가 되어 있곤 하였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발딱 일어서서 또 청소에 매달린 그 시간들이 어떤 면에서는 꽤 좋았다.
일단 깨끗해져서 보기에 좋았고, 또 아들부부가 와서 이만하면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그렇게 닷새가 지나고 다시 남편이 올라오는 금요일이 되었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붉은 산수유를 보면 연노란 꽃이 필 봄이 떠오르고,
나는 언제나 이곳의 산수유꽃을 보며 봄의 시작을 느끼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에 나갈 때면 꽃기린의 붉은 꽃은 볼 때마다 소소한 작은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번엔 설 전에 미리 친정을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북한산의 멋진 바위들.
일요일엔 다시 뒷산에 올랐는데 지난주보다 조망이 트였다.
일요일엔 설 쇠러 작은아들이 왔고, 다음날에 함께 아산집으로 왔다.
무슨 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사한 아산집에서 처음 하룻밤 자고 가는 사람이 아들이어서 참 좋았다.
그 아들과 설날 다섯 시에 일어나서 새벽에 시댁으로 차례 지내러 갔고,
생전 처음 모두 다 마스크를 쓰고 차례를 지냈다.
그 장면은 큰아주버님께서 사진으로 남겼다.
점심 식사 후에 아산집으로 올라오면서 작은아들을 곧장 서울로 가는 지하철 역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듯한 허전함을 느꼈다.
이놈의 지독한 짝사랑은 언제쯤 끝나려나......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다.
남편이 곁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허전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설 다음날엔 베이커리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언제나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뜨거운 아메리카노.
바람이 꽤 찬데 햇살은 따스하다. 그래서 신정호를 도는 사람들이 많았다.
둘이서 창가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신정호를 바라보는 기분이 꽤 좋았다.
얕은 곳은 얼어붙었고,
깊은 곳은 얼음이 녹아 오리떼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먼산엔 눈이 희끗희끗,
호수면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추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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