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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김장하러 가던 날

by 눈부신햇살* 2021. 11. 15.

 

 

김장하러 가던 날,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토요일, 계룡산 산행 중에 김장하러 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이른 아침, 안개가 어찌나 짙게 끼었는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안개 사이로 동그란 해가 보이다 말다 하다가

해가 조금 더 환해지자 점차로 안개가 스러져 갔다.

 

김장하는 날은 언제나 추워서 오들오들 떨어가며 절여진 배추를 씻곤 했는데

다른 해보다 보름 정도 앞당긴 날이기도 하고,

안개 낀 날은 포근하다더니 낮에 기온이 많이 올라가 따뜻했다.

 

예전 각 집의 아이들이 어릴 때엔 김치를 많이 먹어서 김치축제를 벌이듯이

많을 때는 200 포기까지 적으면 130여 포기씩 담그기도 했는데

이제 집에서 따로 담그는 사람도 생기고

아이들이 성장기 때보다 먹성도 줄어서 올해는 40포기만 담갔다.

 

담그는 사람도 줄어서 어머니와 동서, 나,

그리고 큰아주버님, 남편, 시동생, 여섯이 모였다.

200포기씩이나 담글 때엔 큰형님네와 시누이 둘의 가족을 뺀 각 집의 아이들도 다 모여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니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끌시끌 요란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주버님께서 사진 전시회 했다며 액자를 하나씩 줬고, 단감과 홍시,

그리고 우리 가족은 묵은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으로 김치를 작은 통으로 하나만 가져왔다.

 

먹성 좋던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자 그 좋아하던 김치전을 몇 장씩이고 부칠 일도,

김치볶음밥을 후라이팬 가득해서 배 두드리며 먹을 일도 없어져 김치 한 통이면 정말 오래간다.

그리고 중간에 많이 익어버리면 또 햇김치를 먹게 되니 이젠 굳이 김장의 의미를 모르겠다.

 

그럼에도 40포기씩 담그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던

박완서 님의 소설 제목처럼 <그 많은 김치는 누가 다 먹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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