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청명하게 하늘이 예쁜 날,
이제 막 단풍 들기 시작하는 야산을 내려다보며 길을 떠났다.
예정에 없이 갑자기 십오 년여 만에 와본 곳은 상전벽해가 되어 있었다.
기억 속의 옛 풍경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가 드문드문 낯익은 곳이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병원은 덩치가 커지고 커져서 예전 경찰학교 자리까지 확장을 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경찰학교를 쫓아다니며 생활하는 것 같다.
이제 경찰학교는 아산으로 이사 와서 오며 가며 자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큰아들이 예전 이곳의 경찰학교를 떠올리며 학교 입구의 아름드리 벚나무 터널을 떠올리던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은 강렬하게 마음에 다가와서 기억에 저장되었구나.
벚꽃은 벚꽃대로 터널을 이루고, 가을이 되면 벚나무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가 바람에 떨어져 분분히 흩날리고,
눈 내리는 날엔 나무마다 소복이 눈을 이고 눈꽃을 피워냈던 길을 먼 나라에 가서 떠올리던 아들.
심지어 벚나무 월동대비로 밑동을 감싸 놓는 것까지 떠올리던 것을 보고 실실 웃음이 났다.
아마도 먼 나라에 가 있으니 더 많은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는 추억 속에만 머무는 풍경이 되어버린 기억 속의 찬란했던 벚꽃 터널.
이 길은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변함없이 그대로다.
멀리 지인이 다니던 교회가 보이고......
그때도 크게 느껴지던 교회는 옆에 새 건물을 지었고, 그 옆의 건물들도 모두 새로 들어섰다.
그 와중에도 교회 뒤쪽으로 변함없이 꿋꿋이 버티고 있는 오래된 연립주택.
세상에 이렇게 변해가는 속에서 왜 허물어지지 않았을까?
키 작은 단독주택들이 사라지고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서 모든 건물들이 높아진 속에
낮디 낮게 자리한 교회와 초당두부 집을 보고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맛집인가? 여전히 건재하게......
봄이면 저 식당 앞의 커다란 나무에 목련이 뽀얗고 화사하게 피어나서 오갈 때면 언제나 시선이 가서 머무르곤 했다.
어디 가다 탐스럽게 꽃을 가득 달고 있는 저 목련나무를 보노라면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곁에 와 있는 따스한 봄을 느끼며 우리의 화젯거리가 되곤 했던 시절.
그 외는 모두 사라져 버린 우리가 살던 때의 흔적들.
이제 다시 여기에 와 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아들에게 변해버린 예전 동네와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증축 건물에 대해 얘기하자
학교 건물은 인터넷 검색으로 보았다며 한번 들러볼까 하던 마음을 접어야겠다고 한다.
모두가 변해가는 속에 아직도 그 이름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미용실.
아기자기하던 골목길들은 모두 사라지고 대단지 아파트들이 이곳저곳에 들어서서
예전에는 넓게만 느껴지던 길들이 좁게 느껴지고 햇빛을 듬뿍 받던 길들에 그늘이 진다.
돌아오는 길에 보는 내가 속회 예배드리러 가던, 아들의 학교에 어머니 활동하러 가던 날들을 떠올리게 되는 길.
옛 추억을 이제 그만 마감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1년 동안 출근하는 남편이 아들을 학교로 등교시켜주던 길.
하늘을 나는 새떼.
멀리 보이는 행주대교 뒤로 서울 강서구 방화동과 고양시 강매동을 잇는 주황색의 방화대교.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우리에게 깔끔하고 예쁜 도시라는 첫인상을 남겼던 길에
맨 처음 왔던 그날처럼 느티나무 단풍이 울긋불긋 들어 예쁜 길을 만들고 있다.
공원 조경수로도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 느티나무는 한 가지 색으로 물들지 않고
노랑으로 물드는 나무와 빨강으로 물드는 나무, 그런가 하면 갈색으로 물드는 나무도 있어
울긋불긋 알록달록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아산보다 일산이 북쪽은 북쪽인가 보다.
막 들려하는 단풍을 보며 올라왔는데 우리 동네에는 가을이 한창이었다.
온통 가을 기운이 물씬하다.
주변에 가득한 가을이 너무 예뻐서 `가을은 참 예쁘다~~♩~~♪~~♬~~'라는
노래를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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