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휴가에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지리산에 한번 올라보는 게 어떻겠냐는 나의 물음에
많이 놀란 남편이 노고단까지 차로 가는 코스는 어떻냐고 물었다.
많이 서운했지만 그러라고 했다.
얼마 후에 다시 지리산 둘레길은 어떻냐고 물었다.
그러고 싶다면 그러라고 했다.
더 얼마 후에 이 무더위에 산에 오르거나 도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라며
아예 사찰 여행으로 방향을 틀면 어떻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결정된 사찰여행, 첫 번째는 백양사 되시겠다.
마이산을 둘러볼 때만 해도 맑았는데 백양사로 향하는 중에 구름이 몰려오더니
급기야 양동이로 퍼다 붓듯이 쏟아지는 비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도로에 차가 별로 없어 망정이지 무섬증이 확 들었다.
마치 홍해를 가르듯이 물줄기를 가르며 도로를 달리다 보니 살짝 개이고 있었다.
백양사는 오래전 스물두어 살 시절에 한번 다녀갔던 절이다.
붉은 감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렸던 늦가을에 백양사에서 내장산으로 넘어갔더랬다.
30여 년을 훌쩍 넘어 다시 찾은 백양사는 내 기억 속에 전혀 없는 곳이었다.
나는 그때 도대체 무얼 보았으며 무슨 생각을 했더란 말인가.
붉은 감을 달고 서있던 수많은 감나무들만 뇌리에 각인됐던가.
백양사 쌍계루의 단풍 반영 사진을 볼 때면 늘 의아했었다.
나도 늦가을에 백양사에 갔더랬는데 그렇게 멋진 곳이 어디에 있다고 그렇게들 찍어 오는가.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쌍계루라는 이름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 반영이 멋진 곳을 찾고 또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사진작가분들이 사진을 정말 잘 찍어온다는 것을.
그렇게 큰 호수에 비치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혼자만의 생각이거나 우리 부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육산보다는 바위가 딱 버티고 있는 악산이 더 장엄해 보이고 운치 있어 보인다.
한 바퀴 돌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쏟아지는 비.
잠시 그쳐줘서 고마웠어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