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을 나열함

아직 여름

by 눈부신햇살* 2019. 8. 21.







어느 하루 한창 무덥던 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타고 흐르던 날,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가 보았다.

세상에나!

이렇게 더운데 가만히 있어도 힘이 빠지는 날인데

사람 잡을 것 같은 땡볕 속에 저렇게 높은 곳에 매달려 칠을 해야하다니.

밥벌이의 고단함과 서러움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되던 날이었다.







친구와 만났다. 언제나처럼 여럿이 어울려서가 아닌 친구와 나 둘이서.

결혼 전에는 친구와 단둘이 만나서 돌아다니는 일이

여럿이 모여 돌아다니는 일보다 더 많았는데 이렇게 1:1로 만나는 경우가 그동안 없었다는 걸 생각했다.

어제만해도 시간 되는 사람끼리 셋이서 만나려다 한 친구가 새로 시작하는 일로 바쁘다고 해서

그럼 다음에,하고 미루려는 내게 왜 바빠? 무슨 할 거 있어? 라고 묻는 바람에

그럼 우리끼리라도 볼까, 하고 만나게 되었다.


홍대 근처는 친구는 처음이고 나는 두 번째라 조금 헤매다가 얼굴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붐비는 홍대 주변.

연남동에서 점심 먹고, 홍대 쪽으로 옮겨 차 마시고,

다시 연남동 쪽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친구와 나는 비교적 말수가 적은 편.

모임에서도 분위기를 좌지우지 못하는 형.

하지만 단둘이 만나다 보니 말이 끊기지 않게 계속 떠들어야 했다.

함께 있는 다섯 시간여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 했다.

단둘인지라 속마음도 더 털어놓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순전한 이기주의로 보더라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열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가난하고 보다 고독하게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사람이 속을 열면 열수록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중의 `침묵 속의 공감' 을 논한 이 대목이 떠올랐다.

말없이 있어도 어색해지지 않는 관계가  어렵다.


쉬지 않고 떠들던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환히 웃는 얼굴로 자주 보자라며 헤어졌다.

친구야, 말 많이 하느라고 애썼어. 어제는 꿀잠 잤지?








'마음을 나열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소망  (0) 2020.01.14
취중진담  (0) 2019.10.20
여름 하늘  (0) 2019.07.14
어디든 벚꽃  (0) 2019.04.12
눈이 부시게  (0) 2019.03.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