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을 어버이날이면 시골에 내려가 다른 형제간도 불러서 부모님 모시고 식사를 했다.
남편은 힘들게 자신을 뒷바라지한 어머님께 대한 생각이 남달라 그렇게라도 효도를 하고 싶은데
그 생각은 다른 어떤 형제에게는 불편한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 주선한 그런 행사가 마지막이 된 것이 그 적나라한 표정과 행동, 말 때문이었다.
나도 굳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효도는 아니었으나 남편의 생각이 옳고 바르다고 생각 되어서
속으로는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친정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감수했었다.
아무튼 덕분에 명절날을 방불케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부대끼지 않아도 되게 어버이날 연례행사에서 해방 되었다.
올해도 남편 혼자서 어버이날 즈음에 시골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지방의 시댁에 다녀온 작은시누이 내외가
시골 부모님 모시고 온다고 한끼 식사를 하자고 했다.
작은시누이네가 시골에서 올라오는 쪽과 더 가깝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을 맞춰서 고모네 쪽으로 갔다.
모시고 올라오느라 애썼고 또 시누이네서 하루 저녁 묵으시고 큰아주버님이 근무하시는 콘도로 모셔갈 계획이라서
식사비는 우리가 계산했다. 우리 녀석들이 엄청 회를 밝히는지라 당연히 식사비도 엄청 나왔다. 흑...
용돈도 드렸다. 그나마 어린이날에서 해방 돼서 지출이 줄었다. 허리가 휘는 5월이다.
시누이네에서 수원 화성이 가깝다.
나는 시누이네 갈 때마다 수원 화성에 가보고 싶다고 노랠 불렀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었고,
들렀다간 차가 막히는 도로 위에서 시간을 다 보낼까봐 돌아선 적도 있고,
남편 특유의 거, 볼 거 뭐 있다고, 하는 생각으로 그냥 돌아올 때도 있었다.
이제 내 힘이 좀 더 세졌나? 드디어 수원 화성이란 델 갔다.
늘 느끼는 거지만 사진이 훨씬 나을 때가 많다. 사진을 그만큼 잘 찍어온다는 것일 게다.
우리 가족 빼고...
나보다 훌쩍 큰 녀석들과 함께 산성에 오른다.
아들들 쳐다보고 말하기 고개 아프다. 키 커서 참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 옛날 꺽다리 처녀였던 울시엄니 엄청 타박했을 거다. 니 닮아서 작다고.
실제로 내게 참말로 키는 너 닮으면 안 된다고 다짐을 자주 하셨었다.
그럼 얼굴은요? 누구 닮아야카는데요, 하는 궁금증이 치밀었지만
순종적이고 얌전하고 조신한 것이 미덕인 줄 아는 나는 꾸~~~욱 눌러 참았다.
지능은 엄마 머리를 백 퍼센트 닮는다고 하는데도
당신 아드님이 똑똑해서 똑똑한 줄 아실라나?
그래도 울어머니 이제는 내 얼굴도 쓰다듬을 줄 아시고, 손도 스스럼없이 잡을 때도 있으니,
이만하면 인간 승리다. 잘 했다! ㅇㅇㅇ!!!
남편의 작품이다.
잘 찍지 않았느냐고 내게 계속 자랑하며 칭찬을 종용했다.
나, 그런 것 같아, 할려다가
응, 참 잘 찍었다! 팍팍 칭찬했다.
그게 신상에 이로우니까.
그나마 밑의 작품은 실패작이란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애.
더러 내게 눈부신 밝음이 있다고 하실 때 매번 깜짝 놀란다.
사실, 우울할 때가 참 많고도 많은데, 쎄고 쎘는데,
이상하게도 글만 올리려면 급 기쁨과 즐거움 모드가 된다.
글 쓰면 조증이 심각해지는 성향인가 보다.
나란 사람.ㅠㅠ
좌로 가면 내 고향이다.
붉은 황토밭이 참 인상적인 곳이다. 땅빛이 강렬하고 보드랍고 촉감이 좋다.
서울 와서 놀랐던 게 흙색이 검다는 거였다.
마늘과 양파를 많이 심는다고 한다.
나 어릴적엔 유채와 보리와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봄날이면 청보리밭과 노란 유채밭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게다가 멀리 바다가 보일 때면.......아흠......
출장 간 남편이 내 생각을 하며 찍어온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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