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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열함

아들

by 눈부신햇살* 2008. 4. 7.

 

며칠 전, 춘계체험학습으로 월드컵경기장과 비보이관람을 하고 온 큰놈.

친구 녀석이 찍어서 '30명이 너를 기다려야 했다'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싸이에 올린 걸 큰녀석이 보여주길래

다운 받아놓으라 일렀다. 카메라가 좋아서인지 찍는 솜씨가 더 나아서인지 내가 사진기에 담을 때보다 훨씬 잘 나왔기 때문이다.

가끔 조리사 자격증이 그새 하나 더 늘어 아홉 개인 친구가 자신의 작은아들이 얼마나 잘 생기고 다재다능한 지를 늘어 놓을 때면,

오래 전 단짝 친구였던 친구가 멀리 지방에서 수화기에다 대고 자신의 아들과 딸내미가 얼마나 잘 생기고 이쁘며

다재다능한 지를 강조할 때면 나도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우리 아들도 어디 가면 인물 훤하다고 하는데...... 난 그 말이 겁나. 왜냐면 외모에 너무 신경을 써서 귀를 다섯 군데나 뚫었고,

어지간히 멋을 내며, 여자인 나도 안하는 피부관리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일명 <엄친아>들이 얼마나 잘났는지 우스개 소리가 되곤 한다는데, 나도 내 친구들도 딱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남보다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범생이고, 착한 <엄마 친구 아들>.

 

완벽하고 꼼꼼한 성향의 작은녀석은 학원을 웬만하면 빼먹지 않는다.

이 녀석은 지난 수요일에는 학교 밴드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데 무리하게 고음내다가 호흡곤란으로 쓰러질 뻔 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뒷골이 아퍼서 학원에 못 가겠다 해서 하루를 쉬고, 그 다음 날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고 해서 병원에 가서

무리한 고음내기로 목이 경직되었다고 해 물리치료을 받고 왔다.

또 역시 일주일에 세 번 가는 것 중의 한 날인 금요일에는 체험학습 다녀오며 뒷풀이로 아이들이랑 노래방에 가서 노느라고

학원을 하루 빼먹었다. 나무라면 능글거리며 한마디 한다.

"에이, 엄마는 아들이 아퍼도 학원에 가야 하고, 다른 아이들도 다 하루쯤 빠지는 날에도 꼭 학원에 가야 해요?"

 

뭐든지 술렁술렁 넘어가는 아들녀석은 학원 가는 시간에도 그 시간보다 웬만하면 일찍 도착하려는 작은녀석과는 달리

한 오 분쯤 늦게 가는 것이 예사다. 저 춘계학습 날도 일찌감치 서둘러서 6시 반에 아침밥 먹여놨더니 너무 이르다고 한숨

더 자고 늑장부리며 가다가 5분쯤 늦었단다. '30명이 너를 기다려야 했다'라는 글귀를 보며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며 다그치는 내게

별 일도 아닌데 괜히 놀란다는 식으로 싱글거리며 뭉갰다.

 

그 동안 기타친다고 공부를 소홀히 해 제 아빠로부터 어지간히 혼났다. 키가 180 인 녀석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게 해 부부싸움

한 날도 많다. 흘린 눈물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성적이 올라서 제 아빠로부터 조금 놓여났다. 그러나 녀석에게는 별 기대도 안하게 됐고

그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만 가도 좋겠다는 식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서울에 살면서 실력이 안 돼 지방의 대학으로 가는 녀석들도 심심찮게 보는 터라.

 

다행스럽게도 작은녀석이 공부를 곧잘해 그나마 서운한 부분을 채워주는 터라 녀석이 덕을 보는 부분도 있고, 비교 되어 손해를 보는 부분도 있다. 언젠가부터 컴퓨터도 작은녀석이 훨씬 잘 다루고, 기초상식도 훨씬 많게 돼버렸다. 큰녀석은 틈만 나면 기타를 붙들고 있고, 작은녀석은 책을 붙들고 있은 결과다. 작은녀석이 어떤 말을 했을 때 큰녀석이 입을 딱 벌리고 놀라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녀석의 눈에는 이 엄마가 너무 반듯하나보다. 너무 반듯한 엄마가 자기를 네모 반듯하게만 키우려니 튀어나가려는 기질이 자기에게서 생겨났다나. 튀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을 자신도 어찌할 수 없고, 그것이 왜 나쁘냐고 묻는 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또, 조만간 청소년가요제를 나가겠다는 공사다망한 우리 아들. 장차 무엇이 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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