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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방

루쉰의 편지

by 눈부신햇살* 2005. 9. 7.


 

 

 

『루쉰의 편지』란 책은 인터넷의 한 카페에서 알게 돼서 친해지게 된 분이 보내준 책이다. 원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어서 그런 사람이 내게 책을 보낸다면 과연 어떤 종류의 책을 보낼까 궁금했었는데 루쉰의 글에 대한 댓글에서 얘기를 나누어서였는지 책 좀 보내봐봐요,라는 말에 '루쉰의 편지'와 '탐서주의자의 책'  두 권을 냉큼 보내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피천득 님의 '인연'이라는 책과 그즈음에 나온 '산책의 숲'(야생초 편지,란 책이 훨씬 좋은데......)과 나나 무스쿠리의 시디 2장을 보냈다.

 

루쉰의 글이라고는 단편소설 '아큐정전'과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라는 유명한 글만 알고 있었다. 루쉰과 그의 연인 쉬광핑(달빛,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이 주고 받았던 편지를 보면서 한 사내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딱딱하고 냉철해 보이기만한 사내의 가슴 속에서도 그렇게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감정이 숨어 있을 수 있구나,하며 미소 지으며, 감히 루쉰이라는 사내를 귀엽다고 생각하며 보았던 책이다.

 

그는 원래 가정을 가졌던 남자로서 그의 주안 부인을 일컬어 그는 '이것은 어머니가 내게 주신 유산이므로 단지 어머니를 공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그의 제자인 쉬광핑과 사랑을 하게 되면서 주고 받았던 편지를 엮어서 낸 책이다.

연애 편지를 모은 책이라고 해서 달콤함만 기대했다가는 단연 실망일 것이다. 보내는 이도 내게 그것을 염려했으니까. 너무 딱딱한 책이지 않을까...... (오해 마시라. 내게 책을 보낸 이는 동성인 여자이니까......)

 

밑줄 친 부분들...

 

*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특수성은 글을 쓰는 사람의 개성에 근거하지만 연서라고 해서 모두가 다 글쓴이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여주기'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글은 종종 진실을 가리고 있을 때가 있지 않은가.

 

* 인간에겐 마땅히 사랑의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

 

* 연애 기간은 물론이고 결혼 생활의 영위에 있어 정서적 갈등이 생기게 되면 사람은 심리적인 균형 감각을 잃게 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인 성적 욕구를 사회적 인습으로 인해 오래 기간 억눌러왔다거나 혹은 이성으로 제어하다 보면 본능적인 욕구는 무의식으로 숨어들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소멸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강렬한 반동 작용을 일으켜 세차게 솟구치게 마련이다.

 

* 사람의 기질이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 '미래'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호한 것이다.

 

* 카오스가 주장한 '초기 조건의 민감한 의존성' 이론을 따르자면 예를 들어 '북경에 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한 달 후에 뉴욕의 폭풍이 된다'...'나비효과'

 

* 오늘날의 교육계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실 환경에 적응하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개개인의 타고난 개성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본래 교육의 목적인데 그런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으며 그런 시대가 과연 도래할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

 

* 강한 부정의 심리는 사실은 긍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 사회제도는 변화 발전하며 성숙하지만 사람을 개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루쉰의 사상이었다.

 

* 이상적인 세계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 아무리 현란한 장문의 글도 간결한 단문을 능가하지는 못합니다.

 

* 편지란 인간과 인간의 영혼을 잇는 다리의 역활을 한다...... 애정이 싹트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편지는 때때로 상당히 결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한다.

 

* 루쉰의 글은 인간적이며 진실한 마음과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다. 루쉰 특유의 문체는 오늘날의 독자는 물론이고 쉬광핑의 미묘한 심리를 더욱 자극하여 연인 관계를 앞당기는 마력을 지녔다고 본다...(각 편지에, 편지에 대한 해설이 붙어 있다. 그 중에서 발췌.)

 

* 열망이 지나치면 실망을 가져오는 법이거든요.

 

* 사람이 무료해진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무료함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어서 치료약이 있어도 고칠 수 없기 때문이거든요.

 

*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올라 애정의 깊이를 서서히 더해가고 있있던 것이다.....(역시 해설에서 발췌. 편지에서 발췌한 건 문장이 표가 나지요?)

 

* 한 개인의 사고와 정서는 붓끝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 진심은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통하게 마련이므로 굳이 미사여구를 쓰지 않고도 상대방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 편지, 특히 연애편지는 영혼의 깊은 교류이다.

 

* 어느 철학자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 "흩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순간의 안락을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 사람의 진가는 결코 큰일을 겪거나 중대한 사건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사소한 행동 방식, 정서적 반응, 타인과의 교류 방식, 외부 세계에 대한 반응 등에서 더욱더 본래의 성품이 잘 드러나게 된다. 제삼자의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능력과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개성과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외부 세계와의 교감이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다.

 

* 사랑과 그리움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결국 드러나고야 마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하는 말은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일 수 있는 겁니다.

 

* 상대방이 나의 중심이 되는 것, 즉 헌신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군중의 틈새에서 누구든 이용당하거나 공격받을 수 있다. 심지어는 실컷 이용당하고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무참히 제거되기도 한다. 정말 잔인한 생존 논리가 아닐 수 없다.

 

* 그야말로 '죽은 뒤의 명예란 생전의 한잔 술보다 못한 것'입니다.

 

*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 연애의 극치란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보완하며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애정의 발전 과정 역시 주동적으로 독립하고 창조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아를 초월해나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오가는 한 편의 연서는 충분히 훌륭한 인생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한 사랑이란 자아 성찰의 기회이며 지속적인 자아 성장의 요인이 되어 때로 능력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

 

* 편지는 연인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매개체.

 

*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입니다.......루쉰.

 

* 인간의 감정은 실타래처럼 복잡하다. 주변의 압력에 저항하고 내면의 모순을 겪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사랑을 추구해온 루쉰은 그 위대함만큼이나 내면의 갈등과 방황이 더욱 복잡했을 것이라는 것은 반세기가 흘러도 짐작할 수 있다.

 

* 금슬 좋은 부부는 매일 마주 대하고 있어도 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잠시라도 헤어져 있으면 그리운 마음은 더욱 간절해져 끊임없이 상대를 궁금해하고 염려한다.

 

* 풍부한 감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깊은 애정과 자상한 배려를 아끼지 않던, 영혼 가득히 아름답고 숭고한 감정이 충만하게 넘치던 루쉰의 본모습이었다.

 

* 편지, 특히 연서는 편지를 쓰는 삶의 내면의 풍부함을 가장 잘 드러낸다.

 

* 인간의 심리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 사랑이란 감정은 억지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루쉰과 쉬광핑은 결혼해서 해영이란 아들을 낳고 약 9년을 함께 부부로 살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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