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포장인지 비포장인지 헷갈리는 길을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세차하는데 곳곳에 흙투성이였다고, 아마도 이 길에서 그리 된 것 같다고 한다.
가는 길에 스틱을 들고 걷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는데
상원사와 월정사를 잇는 선재길(9km)을 걷는 사람들인가 보았다.
우리도 언젠가 와서 저렇게 걸으면 참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이번 여행을 계획했을 때 오대산은 들어있지 않았다.
풍랑으로 배가 뜨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계획했던 일정에서 하루가 비게 되어
그렇다면 어디를 갈까 궁리하다가 오대산으로 낙점되었다.
그렇게 오게 된 오대산에서 만추의 기분을 만끽하게 되다니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너무나 흡족한 마음에 더 좋은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강원도에서 깊은 가을을 미리 느끼고 여행에서 돌아와
내 사는 곳의 이제 막 펼쳐지기 시작하는 단풍 드는 숲을 오며 가며 지켜보고 있다.
이 표시석 옆으로 야자매트가 깔린 길이 있는데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나무들은 벌써 잎을 거의 떨궈 만추 느낌이 물씬 나는 길이었다.
올라갈 때는 입구의 오른편 사자상을 찍고,
내려올 때는 입구의 왼편 사자상을 찍었는데 그제야 알게 되었다.
두 사자상이 같은 듯 다르다는 것을.
이름처럼 번뇌가 사라지는 길인가 보다.
번뇌가 사라진 걸음걸이다.
붉은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서 층계를 오르다 말고 한번 뒤돌아보았다.
여기쯤 오르니 왜 번뇌가 사라지는지를 깨달을 것만 같다.
층계가 무척 가파르다.
힘들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삐끗하여 구를까 봐 오르는 데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느라고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 층계를 올라야 하느니라.
오르다 바라본 왼편.
또 조금 오르다 바라본 왼편.
층계 다 올라 내려다본 풍경.
나란히 두 개 서있는 석상이 신기하여 냉큼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검색해 보았다.
상원사 고양이석상 이야기
오대산 상원사에는 세조와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이 고양이들이 상원사에 들른 세조의 바지자락을 물며 법당으로 못 가게 막아섰다. 의심도 많은 세조가 이상하게 여겨 법당 안을 뒤져보니 그 안에 재수도 더럽게 없던 자객이 있었다는 이야기. 이리하여 이 고양이들은 전용 밭을 하사 받고 석상까지 만들어져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말씀이렷다.
이와 비슷한 일화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금강산 정양사 (正陽寺)가 있다.
한 석상은 목이 좀 긴데, 얼굴이 닳아 없어진 것이고 위에는 관(冠)을 쓰고 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문수동자와 문수보살
문수동자(국보 제221호)
조선 단종을 폐위한 세조가 즉위한 지 10년째 되던 해인 1464년 등창(부스럼병)을 얻게 되자 신미대사의 권유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대사에 행차하게 되었다. 상원사에 도착한 다음 날 오대천 계곡물에 몸을 담그던 중 지나던 동자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가 등을 밀어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지자 기뻐하며 임금의 몸을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대왕도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말라며 홀연히 사라졌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동자는 사라지고 어느새 자신의 병이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았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등창 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기뻐하며 궁에 돌아화 화공을 불러 만났던 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으나 제대로 그리는 화공들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와서 자신이 그려 보겠다고 하여 세조가 그 모습을 설명하자 노스님은 자신이 알아서 그리겠다고 하며 설명도 듣지 않고 그려온 동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아 세조는 놀라 스님이 오신 곳을 묻자 노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즉, 세조는 동자와 노스님으로 화현 하여 나타난 문수보살님으로 두 번이나 친견한 것이다.
이후 의숙공주와 효녕대군의 발원으로 세조의 수복(壽福)을 빌기 위해 문수동자상이 조성되어 1466년 사우언사에 모셔졌다. 이렇듯 문수보살 감응설화는 조선시대까지 전수된 문수정토의 신앙과 문수화현사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오대보탑
봉황보당(鳳凰寶幢)
보당은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의례용으로 거는 깃발로 경내로 들어오는 불자들에게 장엄한 화염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성보물입니다. 당간(幢竿)에 보당을 달아 걸며, 당간을 지탱하는 기둥을 지주(支柱)라 합니다.
범종은 절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한다. 종소리가 장엄하여 종교적인 분위기를 한껏 높이며, 종소리를 듣는 자가 자신이 저지를 악한 행위를 깊이 뉘우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이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친다는 뜻도 있다.
상원사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한국의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본디 어느 사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동 지역의 역사, 문화 등을 기록한 읍지인 ⌈영가지⌋에 따르면, 안동에 있던 종을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왕명에 따라 상원사로 옮겨 왔다고 한다.
종의 꼭대기에 용 모양으로 장식된 부분은 용뉴라고 하며, 이곳에 쇠줄을 연결하여 종을 매단다. 용뉴 옆에는 연꽃과 덩굴무늬로 상식한 음통이 있다. 음통은 일종의 음향 조절 장치로 추정하며, 우리나라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구조물이다. 종의 몸통 위아래에는 구슬 장식 테두리가 있는 넓은 띠를 둘렀고, 띠에 있는 덩굴무늬 안쪽 곳곳에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하늘에 살며 부처를 예찬하는 존재)들의 모습을 새겼다.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에는 구슬과 연꽃무늬로 장식했으며, 당좌 좌우에는 구름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대칭으로 새겨 놓았다.
경쾌한 모습의 비천상은 8세기 전반의 불교 조각 양식을 잘 보여준다.
몸통의 위아래가 안으로 좁아지는 항아리 같은 형태를 비롯해 한 마리의 용으로 장식한 용뉴와 음통을 갖추고 있는 등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보여준다. 이러한 형식은 후대에 만들어지는 범종들의 밑바탕이 되었다.
2008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종각(종을 달아 두는 건물)을 지은 뒤 유리 안에 종을 두었으며, 옆에는 본떠 만든 종을 걸어 두었다.
우리는 이제 강릉으로 가자!
'여행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릉도① - 독도전망대 (30) | 2023.11.04 |
---|---|
강릉에 들러 (26) | 2023.11.03 |
오대산의 깊은 가을 속으로① - 월정사 (28) | 2023.10.31 |
피나클랜드 국화축제 (35) | 2023.10.23 |
피나클랜드 수목원 국화축제 - 아이들 동상과 조형물 (0) | 2023.10.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