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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방

불타는 하늘

by 눈부신햇살* 2023. 9. 19.

오늘은 호수에 산책 가지 말고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해
남편과 둘이서 막걸리 마시다 바라본
주방 창문 밖이
너무나 붉어 마치 하늘에 불난 것 같았다.
다른 날보다 유난히 붉게 붉게 타올라
온통 불바다 같아

어쩜, 저래!
환호성을 멈출 수 없었던  저녁노을.
 

 

 

 

 
 
사랑은 그런 것
 
홀로 잠들어 있는 나를 덮어주던 그림자가 가만히 그림자 하나를 데
리고 와서 옆에 누인 다음 그 둘을 혼곤히 잠들게 하는 것은 사랑이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문득 길을 가다 만나는 찐빵 가게에서 솥 바깥으로 치솟는 훈김 같은
것. 사랑은 그런 것. 호기롭게 사두었다가 오 년이 되어도 읽지 못하
는 두꺼운 책의 무거운 내음 같은, 사랑은 그런 것. 여행지에서 마음에
들어 샀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입을 수 없는 옷의 문양 같은
것. 머쓱한 오해로 모든 것이 늦어버려 아물어지지 않는 상태인 것. 실
은 미안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돌의 입자처럼 촘촘하
지만 실은 헐거운 망사에 불과한 것. 사랑은 그런 것. 백 년 동안을 조
금씩 닳고 살았던 돌이 한순간 벼락을 맞아 조각이 돼버리는 그런 것.
시들어버릴까 걱정하지만 시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들게 두는 것.
또 선거철에 거리의 공기와 소음만큼이나 어질어질한 것. 흙 위에 놀
이를 하다 그려놓은 선들이 남아 있는 저녁의 나머지인 것.
 
-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여행산문집 중에서
 
 
 

 

 
 
'열정'이라는 말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 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
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
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
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를 것이다.
 
- <끌림> 이병률 산문집 중에서
 
 
 

 

 
멀리까지 시야가 툭 트여
노을 맛집인 이 집에선
매일 비슷한 듯 다르게 펼쳐지는
노을을 보는 맛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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