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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올해 김장

by 눈부신햇살* 2022. 11. 28.

매년 이맘때면 우리 시댁의 김장하는 것을 보고서 <김치 페스티벌> 같다고 하시던

블친 애야 님의 표현대로 정말 말 그대로 해년마다 축제 내지는 잔칫집 같은 김장하기였다.

어른들은 김장으로 바쁘고, 아이들은 오랜만에 사촌들끼리 모여서

온 동네를 헤집으며 학교로 어디로 놀러 다니느라 온 동네가 시끌벅적 해지곤 하였다.

 

아이들 먹성이 한창일 때는 많게는 200포기까지 담갔고, 적어야 130포기여서

이른 아침부터 배추 씻는 것은 큰 일이었고, 물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하루 온종일 김치 속을 넣어야 했으며 미처 김장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집이 멀었던 우리 가족만 조금 일찍 출발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먹성도 줄어들며 김치 소비량도 점점 줄어들어 100포기, 70포기,

드디어 작년에는 세 집만 모여서 김장을 하게 되자 확 줄어 40포기를 담갔다.

그러면서 미리 마늘·생강 찧어놓기, 밭에서 배추 뽑아다 절이기,

갓·쪽파·대파 뽑아다 다듬기, 생새우·새우젓·멸치액젓·찹쌀풀 등 준비하려면

어머니 힘드시니까 각자 집에서 따로 담가먹는 걸로 하였다.

 

솔직히 동서와 나는 김치 소비가 예전 같지 않으니까 굳이 김장할 필요 없이 한두 통 사 먹으며

이따금 겉절이나 담그고 다른 종류의 김치를 조금씩 담가먹으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했다. 

그래서 모두 모여 김장하는 것은 관두자고 하였건만 올해 또 김장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어쩌겠나. 또 김장을 하러 가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하루 전 날,

그만 어머님이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가셨다.

 

쓰러지신 중에도 둘째 아주버님에게 연락을 하셔 일찍 손을 써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시대가 이러다 보니 마음대로 병문안도 가지 못한다.

PCR 검사확인서가 있어도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내내 환자와 있을 경우에만 

병원에 들어갈 수 있단다. 그래서 돌아가는 상황을 간병인으로부터 전화로 전해 듣는 형식이다.

 

큰 일을 척척 잘 해내는 둘째 형님네는 일찌감치 김장을 하셨다고 하고,

큰 시누이는 먼 곳에 사는 데다가 일로 바빠 어쩌다 보니

일머리 잘 모르는 나 셋째 며느리와 작은 시누이와 동서가 모여 30포기 김장을 하게 되었다.

그 상황이 우스워 우리 셋은 시종일관 헛웃음을 웃었다.

 

작은 시누이도 많이 걱정되어 유튜브로 미리 공부를 많이 해왔단다.

아무튼 유튜브 요리강사가 알려주는 대로 북어대가리와 멸치·다시마·표고를 넣고 육수도 끓이고,

찹쌀풀도 쑤고, 생새우도 넣고, 새우젓과 멸치액젓 넣고, 이렇게 저렇게 머리 맞대고 담근

김장 맛이 훌륭하여 특히나 열심히 공부한 작은 시누이의 뿌듯함은 차고 넘쳤다.

그리고 서툰 사람들끼리 김장 담그기는 더, 더, 더 재미난 일이기도 하였다.

 

하긴 주부 경력 30년에 어깨너머로 본 것이 얼마인데 주도적으로 해보질 않아서 그렇지

그걸 못하겠나 싶지만 큰 일 앞에서는 언제나 움츠러든다.

그렇게 담근 김치를 이 집 저 집 오지 않은 형제간에도 조금씩 맛보기로 보냈더니

저녁엔 둘째 형님으로부터 수고했다고 전화가 와서 체험담 끝에 한참 웃었다.

 

 

시동생이 사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린 봉두난발하고 대야 닦고 있는 내 모습.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그런다.

- ㅇㅇ이 열일 하네. 시골집이라 풍경이 정겹다.

다른 친구는 단독주택 살 때 생각이 나는지

- ㅇㅇ이 모습 보니 옛날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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