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달력에서 11월을 일컬어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란
표현이 간혹 엉뚱하게 해석되는 날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북서쪽으로 난 창의 커튼을 젖히면 자욱한 안개로
놀라는 날들이 연일 이어지는 달이 11월인가 싶다.
안개로 가렸다가 이내 걷히면서 짜잔! 나 여기 있었지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던 거야, 하는 듯이 매일매일 안개가 낀다.
원래 11월이란 달에는 큰 일교차로 그리 안개가 자주 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11월이 되자 안개가 자주 낀다는 것을,
어떤 날엔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오리무중이 되는 것을 목격하는 날들이고,
그것을 평상시엔 시야가 멀리까지 트이는 이곳 소도시 변방에서 살면서
새삼스럽게 더 잘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개가 어느 정도 걷히기 시작하자 찍은 사진.
정말로 자욱하면 아무것도 안 보임.
뒤돌아 보니 작년 11월에도 이렇게나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정훈희의 <안개>라는 노래도 떠올렸고,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란 시도 떠올렸더라.
또 작년에는 11월 중순에 일찌감치 김장을 하게 되었는데
시골 시댁에 가는 이른 아침, 아니 새벽녘에도 안개가 자욱하였더라.
뜬금없이 호박죽.
지난번 시골에서 가져온 호박을 내버려 뒀다가 이러다 썩어버리게 될까 봐
부랴부랴 서둘러 호박죽 끓였다.
평소에는 조신하고 얌전하다는 평을 듣는 나이지만
내 속에 아무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사는 이중인격 내지는 다중 인격자인지
늙은 호박 껍질 벗기다가 왼손 엄지손가락을 살짝 베었는데
그 작은 상처에도 불편한 것이 생겨나더라.
남편 지인으로부터 또 감 한 상자가 들어왔다. 공주 출신의 감이다.
이번에는 단감보다 대봉이 훨씬 많아서 냉장고에 나란히 나란히 줄 맞춰 세웠다.
익는 대로 하나씩 꺼내다 먹을 요량이다.
둘이 걷는 게 좋아!
제법 쌀쌀해져서 코끝에 찬 기운이 와락 덮치는 밤공기를 쐬며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일은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이다.
별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도는 내내 나누며 깔깔거리거나
때로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시간이 주는 평온함이 좋다.
멀리서 보는 불빛이 주는 따스함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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