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에서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을 보았다.
처음엔 여주인공 `다이안 레인'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을 보고 놀랐다.
그러다 시술하지 않은 주름진 자연스러운 얼굴이 만들어내는 풍부한 표정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고 맵시 나게 잘 나이 들었구나!
미국인 앤(다이안 레인)은 귀가 아파서 영화 제작자인 남편과 함께 부다페스트에 가지 못하고
남편의 동업자 프랑스인 자크와 함께 먼저 파리로 가게 된다.
차로 대략 8~9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2박 3일에 걸쳐 자크의 차로 파리로 가는 길.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과 여러 번의 식사.
어떤 풍경과 어떤 장면들을 유명 화가의 그림과 함께 보여주어
그림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보랏빛 라벤더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폴 세잔의 고향 액상 프로방스를 지날 때는 생 빅투아르 산의 그림을,
갑작스러운 자동차 고장으로 뜻하지 않게 갖게 된 호숫가 푸르게 우거진 나무 밑에서 가진 피크닉은
마네의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베즐레이의 한 식당에서 결혼식 축하 음악이 흘러나오자 두 사람은 춤을 추게 되는데
그 장면에는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를 함께 이어 보여준다.
칸에서부터 액상 프로방스, 생 빅투아르 산, 가르수도교, 리옹, 베즐레이 성당을 거쳐 파리에 이르게 되는 길 위,
달리는 차 안에서 눈썹 같은 초승달이 뜬 모습을 보고 불현듯 다이안 레인이 한 편의 하이쿠를 읊는다.
When I see the first new moon faint in the twilight
I think of the moth eyebrow of a girl
I saw only once
황혼에 창백한 초승달을 보았지
딱 한 번 보았던 소녀의 눈썹이었네
- `오토모노 야카모치'의 하이쿠라고 한다.
사실 흥미를 확 끌만한 줄거리나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 배우를 보는 맛도 없이
순전히 간접 여행을 하는 듯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재미에 빠져 보다가
이 한 장면이 영화의 품격을 확 올려주는 듯한 감명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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