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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자랑

by 눈부신햇살* 2021. 2. 20.



큰아들이 성당에 처음 나가게 된 건 군에 있을 때였다.
어릴 때 비록 엄마 따라서 이긴 하지만 교회를 다녔음에도
교회가 아닌 성당을 택한 건 뜻밖이었다.

성당은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한번 등록하면
촘촘한 연결망으로 이어진다는 걸 몰랐다.
제대 후 동네 성당으로 자동으로 연결되었다.

이따금 성당에서 사람이 나와 무슨 용도인지 모르는 성사표를 주고 가거나
부활절 달걀이나 연말이면 달력을 가져왔다.
그 모든 일이 꼭 큰아이가 집에 없을 때 생기곤 했다.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 얘기를 하면
아들은 멋쩍은 웃음으로 동네 성당은 한 번도 나가지 않았는데도
이런 걸 가져오셨다며 성당에 나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다 아들이 먼 나라로 떠났고 지나간 연말에 어김없이 또 달력을 들고 오셨다.
아들은 다른 나라에 나가 있으니 이제 이런 것은 가져오지 않으셔도 된다며
사양했으나 극구 안겨주고 가셨다.

다른 때와 달리 두 분이서 함께 오셨었는데
그 두 분이 눈과 입을 맞춰가며 엄마 인상이 너무 좋다고 하셔서
괜스레 더 활짝 활짝 웃게 되었다.

이틀 전이던가, 또 두 분이서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이제는 이인일조로 방문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손에 예전에 주고 가시던 성사표 같은 게 들려 있었다.

아브라함 형제네 집이 맞냐,
왜 전화 연락이 안 되느냐, 라는 물음에 여차저차 답변을 하는데
아브라함 형제와는 어떤 관계냐고 물으신다.
엄마라는 말에 놀라고, 그 아들이 결혼했다는 말에는 더 놀란다.

정말로 며느리를 보았느냐고 되물으신다.
며느리 볼 나이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머리를 갸웃하신다.

아, 아들이 결혼을 했지만 나이가 많지는 않아요, 이제 스물아홉이에요, 했더니
암만 그래도 엄마가 너무 젊단다.
오잉! 나야말로 깜놀!
내가 그렇게나 젊어 보인다고!
에헤라디야! 머릿속에서 사물놀이 한판이 벌어질 일이다.
건강검진 결과서에 심뇌혈관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6세나 낮게 나왔을 때만큼이나
큰 기쁨을 주는 말이었다.

 

혈관 나이가 젊다거나 인상이 젊어 보인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도리어 그만큼 나이 들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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