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는 휴일 오후에 뒷산에 오르는 것이다.
남편과 함께 또는 혼자서 오르는데
어제 남편은 골프연습하러 가서 혼자 오르게 되었다.
며칠 따사롭던 기온이 떨어지고 그로인해 바람이 차가워
알레르기비염이 있는 코를 연신 훔쳐내야 했지만
혼자 오르는 산길이 나름대로 퍽 좋았다.
휴대폰으로 담아서 선명하지 않다.
그런데 저 산꼭대기의 철탑이 설마 저렇게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
사진을 삐딱하게 찍었나?
산의 초입구에 공원을 조성해 놓고, 한쪽은 묘목장을 만들어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는데
지난 늦가을에 다 뽑아내고 다시 어린 나무로 심어 놓았다.
겨울이라 을씬년스러운 풍경이 더 썰렁해졌다.
208m의 낮은 산이지만 제법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고 나면
영천사까지 포장된 길이 나오고, 그 길을 조금 내려와 꺾어돌면
꼭대기 공터에 이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남편과 함께 오면 마치 이조시대 사람들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남편은 가뿐한 걸음으로 저 앞에 가고,
난 칠팔월 뙤약볕 밑의 견공처럼 헥헥거리며 예닐곱발짝 떨어져서 올라간다.
그래도 꼭 공터로 먼저 들어서지 않고 저 꼭대기 어디쯤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아도 습관처럼 꼭 물어보게 된다.
"왜?"
어제처럼 남편과 함께 하지 않고 혼자 가는 때면 그냥 느긋하게 음악 들으며
차근차근 터벅터벅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쉬지 않고 올라간다.
하늘도 올려다보고, 숲도 바라보고, 도시도 내려다보고, 음악에도 빠져보고......
나무들이 비탈에 서 있는 이 숲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이 계절에는 이렇듯 황량하지만 봄에 새순이 돋거나 여름에 무성한 초록일 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머무르게 하는 힘이 있다.
다행히 이 길은 질러가는 길인지라 인적도 드물다. 혼자서 맘껏 누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아무리 바람이 차갑다고 해도 그 속에 들어있는 봄기운은 무시하지 못하나보다.
다른 때보다 사람들 엉덩이를 더 들썩거리게 하는 볕이었는지 작은 산에 사람들이 그득하다.
지난 겨울 내내 썰렁해 마지 않던 공터에 사람들이 바글거려서 벤치에 조금 앉아 있다
곧 바로 내려온다.
남편과 함께라면 20분 가량 머물러야한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게 다리를 쫙쫙 벌리는 스트레칭을 해서
사람들의 놀란 시선도 더러 몸에 받아보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남편인지라
이런 저런 운동으로 몸을 풀어준다.
난 그저 그런 남편 옆에서 멀뚱멀뚱거리며 먼산이나 바라보다가 음악에 심취해 있거나
그러다 남편이 말 시키면 제대로 못 알아 들어서 엉뚱한 대답이나 팍팍 하거나
팔십 먹은 할망구처럼 큰소리로 외치거나 한다.
"뭐라고?"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길에 거치게 되는 작은 절 <영천사>.
오래 전 저 귀퉁이 약수터에서 고향 후배녀석을 우연히 보고 긴가민가하다 내려온 적이 있었고,
그 사람은 후배가 맞았다. 요즘은 통 못 본다.
아니, 한동안 같이 산에 오르자고 문자를 꽤 보내왔는데 쑥스러워서 매번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댔다.
여자도 아닌 남자 후배와 둘이서 산에 오르면 그 서먹함을 어찌하라고......켁.
원래는 저기서 약수를 꼭 한잔씩 마시곤 하는데 겨울이라 한동안 얼어 있더니
이젠 아예 물이 말라버렸다.
내 사는 곳 가까이 산이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고, 맑은 공기를 실컷 들이킬 수 있고, 건강을 다질 수 있고, 아울러 부부간의 정까지 다져진다.
저 산길에서 싸울 때도 있었고, 정겹게 손 잡고 걸을 때도 있었고,
아이들 문제를 의논할 때도 있었고, 누구 흉을 엄청 본 적도 있었다.
내 인생의 몇 페이지를 장식할 자그마한 고봉산.
네가 거기 있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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