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수업
내년이면 따로 나가 살게 될 작은녀석이 미리 요리를 배운다. 내가 그리하라 시킨 적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식사준비할 때면 자기에게 좀 가르쳐달라 했다.
그러더니 식사 때가 되어 달그락거리는 소리라도 날라치면 예의 그 소머즈 귀로 귀신같이 알아듣고
온 얼굴에 미소를 그득 띄운 채 방에서 나오곤 한다.
딸이 없고 아들만 둘 있는 집에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친밀감, 아기자기함을 느끼며 주방에 나란히 서서
오순도순 기쁘게 작은녀석과 식사 준비를 하곤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딸 있는 집에선 이렇게 알콩달콩한 재미가 넘쳐나겠지.
아무튼 가르치는 재미도 있고, 둘이서 함께 하는 재미도 있고, 혼자 하던 걸 둘이서 하는 수월함도 느끼며
작은녀석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지금껏 한 요리는 어묵볶음, 두부조림, 된장찌개, 채소 겉절이, 수제비, 닭볶음탕, 떡볶이.
일 년 전부터 요리에 관심이 생겨 요리 유튜브 동영상을 유심히 보았다더니 칼질이나 손질이 서툴러서 그렇지 곧잘 한다.
요즘은 맞벌이 시대이고, 나중에 아내 되는 이가 더 바쁠 수도 있으니 퍽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작은녀석의 학교에서 바라본 서울타워
남산에 대한 감회
젊은 날, 푸르른 이십 대에 마음이 싱숭생숭한 날에는 단짝 친구와 둘이 남산으로 갔다. 모든 것을 나 몰라라 제쳐두고 그때의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보면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상쾌해지곤 했다. 더러는 그 상쾌한 바람마저도 내게 전혀
소용없던 날도 있었지만 이제 이 나이쯤에서 뒤돌아보면 항상 그 친구와 함께 고뇌하던 내 젊은 날이 남산과 함께 떠오른다.
더 정확히는 우리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그 벤치라고 해야 할까.
세월이 흐르고, 젊음도 가고, 곧잘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언제나 꼭 붙어살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는 얼굴 못 본 지가 20여 년,
소식조차 없는 지가 어언 10여 년이다.
무심한 세월.
무심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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