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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생일 선물

by 눈부신햇살* 2012. 12. 17.

 

< 서정 육심원의 '화장하는 여인'>

 

 

 

 

 

남편으로부터 올해 생일 선물로 화장품세트를 받았다.

남편이 생일선물을 거른 적도 없는데 전혀 기대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내 생각으론 뜬금없이 받게 됐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라 무척 반가웠어야 하련만 그게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내심 선물을 받는다면 예쁜 가방이나 옷, 뭐, 그런 것들을 받고 싶었나보다.

이상하게도 예쁜 가방이나 옷들에겐 눈길이 가고 눈길 가는 곳에 마음도 왕창 따라가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솟아오르지만 화장품엔 전혀 욕심이 일지 않는 탓이리라.

 

얼굴의 점을 뺀다거나, 문신을 한다거나, 공들여 화장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누가 화장품을 주면 그냥 주나보다, 누가 정성들여 화장을 했으면 그런가보다,

문신을 했으면 자연스런 얼굴이 좋던데 뭐하러 한다지, 하는 사람인데

그런 마누라 성향을 모르지도 않을 텐데 엉뚱하게도 왜 화장품을 샀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꽤 고가의 기능성과 기초화장품이여서 있는 생색 없는 생색 다 내느라

어깨에 힘께나 주면서 내 반응을 살폈다.

ㅡ 어, 나는 그런 비싼 화장품 안 쓰는데. 돈 아깝다.

그러다 얼마 후에 끝내 덧붙였다.

ㅡ 그럴 거면 가방이나 사주지이이이~~~호호호~~~~(이건 은근히 미안해하는 웃음소리).

서운한 안색으로 바뀌더니 이내

ㅡ 일단 써봐. 당신 나이엔 이제 이 정도 써줘야 돼. 주름살 예방도 되고.

  너무 젊어져서 남편 늙다고 구박하지 말고. 써보니까 너무 좋다고 또 사달라고나 하지마.

  가방은 내년에 사줄게.

다른 말은 하나도 안 들어오고 내년에 가방 사준다는 말만 귀에 쏘옥 들어와서

ㅡ 정말? 정말? 내년엔 가방 사줄 거야?

화색이 돌아서 묻는다. 묻다가 생각해보니 아직도 철 덜 든 사춘기소녀 같은 여편네다. 나란 사람.

 

올해가 결혼 20주년인데 별다른 일없이 그냥 지나갔다,

심지어 며칠 지나서 결혼기념일이 지나버렸다는 걸 알아 차렸다.

서로 어처구니 없어서 헛웃음만 짓다가 그저 그렇게 20주년을 보내 버렸네.

 

다혈질이어서 그 성질이 많이 못마땅했던 남편,

이제 나이 드니 그 성질 조금 누그러 들어서 살만하고 좋아.

언제나 무뚝뚝한 어투가 불만스러웠던 남편,

그도 이제 많이 신경 써서 더러 부드러운 날도 많아져서 좋아.

심하다 싶게 효자여서 때때로 마누라 힘들게 했던 남편,

이제는 내 입장도 헤아릴 줄 아는 나이가 돼서 좋아.

질투 많은 남편.

아직도 그 질투는 여전하니 언제쯤 수그러들까?

 

예민하고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잔걱정 많고 까탈스런 아내와 사느라고 고생 많았어.

그리고 나 많이 예뻐해줘서 고마워.

사랑 받는 여자는 백 미터 밖에서 봐도 빛이 난대.

얼굴 환하다는 소리 듣고 살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화장품 잘 쓸게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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