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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방

러브 미 이프 유 대어

by 눈부신햇살* 2005. 4. 6.
 


<러브 미 이프 유 대어>

" La Vie En Rose " 삶에의 본원적 갈망을 노래하다

감독: 얀 사뮤엘
음악: 필립 롱비
평점: ★★★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때로 많은 텍스트들은 절대성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절대성을 형상화한다. 장 주네는 <아멜리에>에서 1900년대 초 유럽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스케치북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의고적이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파리를 스크린에 채웠다. 그 위에 아멜리에라는 요정을 띄우고 ‘동화’적인 드림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프랑스의 궁정실내악을 방불케 하는 얀 티어슨의 고풍스러운 음악은 여기에 ‘선험’적인 노스탤지어를 불어 넣었다. 주네는 전지적 중매에 능하지만 정작 자기건사를 못해 고독한 아멜리에를 종래 해피엔딩으로 감싸안으며 그녀에게 가능할 뻔 했던 ‘현실적인 어두움’을 떨어낸다. 아멜리의 고독에서 동병상련을 빙자, 자위 하던 관객은 그 결말에 박수치면서도 허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동화의 가공적 세계관을 끌어들인 주네가 얼마간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삶에서 연속적이고 절대적인 걸 꿈꾸는 것은 동화라는 ‘가공적’인 의지로나 가능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

얀 사뮤엘의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에서 "La Vie En Rose"의 리메이크가 흘러 나올 때 느낀 건 <아멜리에> 때와 같은 '속세적' 허무였다. 샤뮤엘은 두 연인의 기괴한 사랑 이야기를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장미빛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역능적力能的인 헌시의 대상이 된다고.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강압적인 훈육, 프랑스계 폴란드인이라는 인종적 소외 등을 경험하면서 관료적 체제가 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혐오하게 된 줄리앙과 소피는 돌아가며 그들을 곯려먹는 '내기' 게임을 시작한다. 그것은 주류가치적 세계관에 반대하는 펑크적 삶의 양식이지만 동시에 일상성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고백을 유보하거나 유보당하는 그들에겐 사랑의 완성 직후에 올 정착과 반복적 삶의 혐오가 감춰져 있다. <스위밍풀>에서 클래식 오케스트라 와 유로팝의 감성을 조합해 팜므(femme) 미스터리 음악을 만들어 낸 필립 롱비의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의 음악적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반복성’이다. 이 반복은 한 번도 지상에 안착해본 적이 없는 삶의 절대적 미덕과 가치에 대한 속인들의 끝없는 열망에 바쳐져 있다.


롱비의 테마는 주제선율과 샹송 “La Vie En Rose”의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이루어진다. 열 아홉 개의 트랙 중 다섯 곡의 “La Vie En Rose”를 빼고 남는 것은 <씨네마천국>의 모리꼬네나 < E.T. >의 조지 윌리엄스를 방불케 하는 네오클래식이다. 이는 MTV 식 화면 콜라주와 상대적 시간성으로 종횡무진하는 두 연인의 시간의 끈을 단일한 욕망으로 마름질한다. 실로폰과 하프의 “La Vie En Rose” 바리에이션이 주는 안락함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서두로 깨어지고 오케스트레이션의 주제선율로 변화를 겪는 “Beethov’ Fantasie/Cap Ou Pas Cap”과 재즈로 다시 풀어낸 “Invitation”은 내기와 이별을 반복하는 이 기구한 남녀의 연애모드에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알린다. 그 즈음마다 “La Vie En Rose”의 바리에이션도 하나씩 끼어든다.

그러나, 아멜리에와 달리 이들은 끝내 사랑의 확인과 정착한 삶에의 가공적 통합을 거부한다. 우연이건 필연이건, 서로간의 내밀한 대화를 유보하고, 섹스를 유보하고, 결혼을 유보하고, 일상적인 만남을 유보하던 그들의 무성애적 사랑의 연대기는 차라리 동반자살을 택한다. 루이 암스트롱의 ‘장미빛 인생’이 흐르고, 검버섯이 핀 두 노인이 여전히 ‘내기’를 즐기며 식지 않은 사랑을 고백하며 수줍어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줄리앙, 소피의 실제 미래가 아니다. 모든 걸 반복의 메커니즘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삶에서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 의심했던 삶의 완전한 신기루다. 그 판타지 뒤에서 그들은 삶의 일상성과 반복성은 저주이며 심지어 부르주아적이라고 부르짖는다. 아카펠라 버전(# 11)과 유로 일렉트로니카(#19)의 변질된(?) ‘장미빛 인생’은 있어도 에디뜨 삐아프의 오리지널은 없는 이 스코어가 그래서 애틋하다. ‘본원적인’아름다움이 있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료출처 - 다음검색 좋은신문 좋은하루 good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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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는 말 ] 며칠전에 비디오로 본 영화이다. 'Love me if you dare - 자신 있으면 나를 사랑해봐' 프랑스 영화는 조금 지루하고 난해한 게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난해한 건 다른 프랑스 영화들과 비슷하다고 할까. 후반부에 둘이서 공사장의 시멘트 속에 묻히게 되는데 그것이 진짜인지 35세에 이르러서야 서로의 가정을 버리고 부부의 연을 맺어 노년에 이르는 모습이 진짜인지 워낙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영화인지라 분간하기 어려웠다. 멀고 먼 길을 돌아서이지만 결국은 서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고 영화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장미빛 인생'이 참 듣기 좋았다. 어느 것이 진짜 결말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서 결국엔 검색을 했다. 그 결과 둘이서 시멘트에 묻히는 것으로 동반자살을 감행한 것이 이 영화의 현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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