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여름은 순우리말이지만
'여'는 한자 '남을 여'와 발음이 같아 한가롭고 잉여적인 느낌을 풍긴다.
글자를 다 발음하고 나서도 입술은 여전히 열려있다.
`름'이라는 글자는 미세한 어지러움을 품고 있다.
김선오, 『미지를 위한 루바토』<여름의 시퀀스> 중에서


여름방 / 김달진
긴 여름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앉아
바람을 방에 안아 들고
녹음을 불러들이고
저 불암산마저 맞아들인다



여름 / 이상홍
아침부터
그늘은 일어나 무릎끓고
기도를 했지만
낡은 교각 뒤에서
떨던 몇 마리까지
차례로 끌려나와
탈색당하는
정오
연도에는
치를 떠는 수만의 푸른 이파리들



그 여름, 별리 /한이각
산모퉁이 돌아 기차 간다
두 어깨를 흔들며
여름비 갠 날
아카시아 향 싸아한 그대
눈빛으로도 내 온몸은 떨렸건만
해 저물어 들녘엔
저녁 불빛 하나 둘 켜지고
내 사랑도 저물어
그리움의 등불 하나 둘 밝아지는데
고요 속에 잊어 달라 잊어 달라
민들레 꽃잎으로 떠도는 향기
바람에 나뭇잎은 온몸으로 사운대건만
홀로 남은 나
소쩍새 울음에도 가슴을 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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