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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느긋하게

나물 캐는 아줌마

by 눈부신햇살* 2022. 4. 5.

 

제목: 병속의 맨드라미꽃

 

이모가 엄마에게 선물한 그림인데 바로 밑의 동생이 가져갔다가

다시 가져왔다며 나더러 가져가라고 해서 냉큼 들고 왔다.

동생은 직접 해바라기를 수채화로 그렸다는데 엄마가 보기엔 동생의 해바라기가

저 그림 속의 맨드라미보다 훨씬, 훨씬 더 참말 이쁘단다.

음, 나는 동생의 그림을 아직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맨드라미가 이쁘다.

집안에서 오며 가며 기분 좋게 보고 있다.

 

 

헬스장의 트레이너가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렇게 열심히는 하지 않는다고 변명하자

"매일 하는 데에 의미가 있죠."라고 정의를 내려주던 운동을 빼먹고 나물을 캐러 갔다.

나물 캘 만한 곳을 찾아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길가에서 야생화가 아닌 원예종 무스카리가 보여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조금 더 가자 어느 집 앞 텃밭 한 구석에 이렇게 무스카리가 심어져 있었다.

꽃씨를 거기까지 날리다니 대단한 녀석이구나!

마치 작은 포도송이 같구나!

 

이 집주인은 꽃을 무척 좋아하나 보다.

담벼락 밑으로는 이렇게 수선화 몇 포기가 그림 같이 피어 있었다.

 

이쪽저쪽 텃밭이 있고, 그 한 귀퉁이에 자리한 병아리 같은 노란 수선화.

그 왼쪽 옆 밑엔 혹시 꽃잔디 아닐까?

그래서 수선화 지고 나면 꽃잔디 피고, 꽃잔디 지고 나면 작약이 필까?

지난해에 지나가면서 보니까 작약도 피던데 꽃잔디와 작약이 어우러져 피었던가?

지난해의 기억은 벌써 내 머릿속에 없다.

 

내 마음대로 내 나무로 지정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제 막 물이 오르고 새순을 틔우기 시작한 저 나무는 왕버들나무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뭇 버들의 왕'이란 뜻의 왕버들은 물가에 자리 잡고 살아서 평생 물 걱정은 안 하고 살지만 

항상 습기가 가득한 몸체로 살다 보니 둥치가 잘 썩어 왕버들 고목은 대부분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곤 한단다.

저 나무는 아직 젊어서인지 구멍은 없다.

 

역시나 멋지다!

 

저곳을 지나 작년에 나물 캐던 곳까지 갔으나 벌써 논을 갈면서 물이 새 나가지 않게

일부 흙을 논둑에다 바르는 농사 준비를 끝낸 후라서 쑥 캐기는 적합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 아직 그 준비를 하지 않은 이곳 근처 논두렁에서 쑥을 캤다.

어린 민들레 싹도 캐고, 아직 물 대지 않아서 질척거리지 않는 논가에서 돌미나리도 캤다.

 

지나가던 어르신이 돌미나리를 캐기엔 아직 어리다고 했지만

우리는 어린싹을 더 좋아하는지라 신나게 정신없이 캤다.

집으로 돌아와 스테인리스 대야에 붓고 보니 돌미나리의 양이 가장 많았다.

살짝 가리는 것이 있는 남편이 참 좋아하는 나물이라 다듬고 있을 때부터 벌써 희희낙락이었다.

오늘 저녁에 파릇하게 데쳐 새콤하게 무쳐서 맛있게 먹을 것이다.

 

어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 시간 정도 나물 캐고,

이어 두 시간 정도 다듬은 후유증으로 허리에 근육통이 생겼다. 

계속 쪼그리고 앉아서 나물을 캐다가 일어서서 집으로 돌아올 때

한동안 굽혔던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이래서 농사짓는 분들은 나이 들면 허리가 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작년에 나물을 캐다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과 나물 캘 때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나물을 캐러 갔지만

내년에도 그 기쁨과 즐거움을 떠올릴지는 미지수다.

허리 아팠던 기억을 더 먼저 떠올릴 수도 있겠고, 아팠던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또 먹는 기쁨과 캘 때의 즐거움을 더 크게 떠올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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