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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어떤 날

by 눈부신햇살* 2021. 4. 14.

 

 

 

비가 개이자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

맑고 드넓게 펼쳐지는 하늘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4월 초 어떤 날, 만만하게 보이는 저 산에 이따금 사람들이 올라가길래 궁금해서 올라가 보았다.

그저 조금 올랐다가 무엇이 내려다 보이는지만 알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20여분 걷다가 내려갈 길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슬슬 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또 무모한 짓을 시작했구나...... 쓸데없이 호기심은 많아가지고......'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20여분 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며

어떻게든 산을 벗어나려고 길을 찾아 헤매었다.

헤매던 중에 내려가는 길일 것 같아 접어들었다가 꿩이 `꿩'하고 외치며 푸드덕 날아올라 

"아유, 깜짝이야!"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꿩한테 나무라듯이 외쳤다.

 

게다가 내 신발은 천으로 된 운동화였는데 발밑의 밤송이 가시가 천 사이로 들어와

내 발 옆을 찔렀다.

"아유, 깜짝이야"

에 이어

"아, 아파! 아이고, 아퍼라!"

하며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나 혼자 징징거렸다.

 

그 와중에도 산 밑이 조금 보일라치면 사진을 찍곤 했는데

미세먼지가 잔뜩 끼었던 날인지라 쓸만한 사진은 없었다.

 

우리 동네 뒷산과는 사뭇 다른 게 어쩌면 그렇게 오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지.

아까는 분명 산에서 내려오는 노부부를 보고서 나도 한번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데 말이다.

하지만 한편 이 인적 없는 산속에서 낯선 사람이라도 마주친다면 그것이 더 무서운 일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길은 보이지 않자 내 걸음은 거의 뛰다시피 하는데

내리막길이어야 산 밑으로 내려갈 것임에도 자꾸만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이러다 내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은 목까지 차올라 연신 헉헉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무서워서 가던 길을 멈추질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는 중에도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죽었는지 흔적이라도 남겨야지.'

그러면서 가는 중에 길 사진 한 번 더 찍고......

`그래도 내가 벌써 60 가까이 살았으니, 아이들도 다 커서 에미의 필요성도 크지 않으니 큰 아쉬움은 없구나.....

그나저나 이 길은 도대체 어디까지 연결되는 것일까? 오늘 중으로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분명 사람들이 올라오는 길이 어디쯤 있을 텐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기는 싫었다.

 

그러다 드는 생각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어디 다른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이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내려가는 길이 보였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며 느긋하게 내려오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멀리까지 아주 멀리까지 간 줄 알았지만 능선을 따라 세 개 정도의 야산을 건너간 것이었다.

빙 둘러가는 길이긴 했지만.

 

내려오다 보니 내가 지나다니며 보던 익숙한 산의 모습이었다.

그 산으로 내가 내려오는 일이 생길 줄이야.

그 산은 묘목장이었고, 주인집으로 연결되는 길이어서 마지막엔 철대문이 떡 가로막고 있었다.

대문이 보이자 커다란 개가 지키고 있다가 우렁차게 짖을까 봐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도 저 멀리 옆집에서 개가 짖었고 그 집에는 닭장 속의 닭들만 꼬꼬댁거렸다.

 

주인장을 만나면 뭐라고 인사하지?

왜 거기서 내려오나, 하는 생각으로 정신 나간 여자로 보지 않을까?

궁리를 하며 다행히 열린 대문을 통과했는데 더 다행스럽게 주인장은 보이지 않았다.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지만 실상은 짧은 시간이었던 40여 분 만에

무사히 익숙한 길로 내려선 나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과수원도 구경하고 못 다 채운 운동시간을 채운 후 집으로 돌아왔다.

 

 

 

 

 

 

 

 

묘목장에 있던 노란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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