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차 안에서 듣는 음악프로의 이금희 씨가 말했다.
토끼와 거북이가 나란히 가려면 누가 맞춰야 할까요?
그건 바로 토끼이다. 거북이는 빨리 가는 것이 능력 밖의 일이고
토끼는 느리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 토끼는 이제야 조금씩 거북이에게 맞춰주긴 하지만
내가 느려도 너무 느린 거북인가 보다.
앞서 가던 토끼가 뒤에 오는 거북이가 무슨 해찰을 하는지 돌아보며 확인하고 있다.
평지에선 결코 뒤처지지 않는데 오르막길에선 어김없이 거리가 생긴다.
저만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허리께에 손을 턱 걸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군.
빠르지도 않으면서 자꾸 해찰하는 거북이를 두고
성큼성큼 씩씩하게 앞서가는 토끼야, 같이 가자!
-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 '숲' 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 같다.
- 숲은 가까워야 한다. 숲은 가까운 숲을 으뜸으로 친다.
- 숲은 의사도 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재활병원이고, 사람들은 이 병원의 영원한 환자인 셈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중에서 발췌
산 초입엔 개망초가 어찌나 흐드러지게 피어 칠월 한낮의 햇볕을 받으며 향기를 뿜어내는지
숨 쉴 때마다 향기가 한 움큼씩 흡입된다. 흔하디 흔한 꽃이지만 무리 지어 피어 있으면 그 또한
퍽 맘을 잡아끈다. 하지 즈음이면 개망초가 만발한다고 했다고 남편이 어디서 들었노라 한다.
노란 미국미역취가 보조를 맞춰 나란히 나란히 피어 있는 좁은 길을 남편이 앞서고 나는 뒤따른다.
남편은 이따금 한 번씩 생각난 듯 나더러 앞장서라지만 난 그냥 뒤에서 타박타박 해찰해가며 걷는 게 재밌고 좋다.
낮은 산이지만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팔라 오르다 보면 숨이 찬다.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산꼭대기 공터에 앉으면 머릿속에서 목으로, 목에서 등으로
땀이 뚝뚝 흘러내린다.
땀 흘린 뒤의 상쾌함과 둘이서 나누는 이런저런 얘기들로 일요일 오후를 보낸다.
그 일요일 산동무께서 요즘은 파스타에 꽂히셔서 큰녀석이 한 상자 사놓은 면을 가지고
처음엔 간단한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더니
좀 더 진도가 나가서 요 몇 주는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어준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인사동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비싼 스파게티보다
백 배는 더 맛있다. 양 적은 내가 많이 먹는 걸 보고 광대가 승천하신다.
조만간 스테이크를 배워서 해주시겠다니 자못 기대가 크다.
그렇게 스파게티를 해 먹게끔 면발과 바질과 파슬리란 향신료까지 샀던 큰녀석이
요번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를 사서 손수 갈아타 준다.
덕분에 입이 호강하며 이렇게 별일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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