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해보는 것들
나는 산보다 바다를 사랑한다. 아주 많이 사랑하여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산이나 바다나 다 사랑한다.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는 대로, 그 속에 잠기면 잠기는 대로. 이 나이에도 바닷가에 놀러가면 아이들보다 더 신나하면서 물장구를 치는 위인이다. 나란 사람은...
나는 말이 없어도 로맨틱한 사람을 좋아한다. 로맨틱한 신사는 더 좋아한다.
나는 말이 없어도 로맨틱한 사람을 좋아한다. 로맨틱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푹 빠져 버린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나는 봄을 사랑한다... 봄의 고운 푸르름과 봄의 화사함, 봄의 따스함이 좋다. 그런 봄이 너무 짧아서 못내 아쉽기만 하다.
나는 밤을 낮보다 좋아한다.
나는 밤보다 낮을 좋아한다. 오전 9 시부터 12 시까지의 시간. 햇살이 눈부시고 맑게 퍼지는 시간.
모든 사물들이 햇빛으로 소독한 듯이 맑게 빛나는 시간.
나는 신나는 노래보다 슬픈 노래를 좋아하고 즐거운 영화보다 진지한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슬픈 노래도 좋지만 쿵작쿵작 흥겨운 노래도 좋아한다. 틀어 놓고 혼자서 몸을 들썩인다. 혼자이니 나의 몸치를 누가 알리도 없고, 뭐라 할리도 없고.
영화는 오로지 멜로물을 좋아한다. 만화하면 순정만화인 것처럼. 아, 덜 성숙한, 미성숙한 자아여!
나는 갈색을 가장 좋아한다.요즘 검정 회색같은 무채색과 온갖 색들이 다 좋아지려고 해 걱정이다.
나는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옷은 보라색이 가장 많다.
나는 사랑을 사랑한다. 영혼이 닿아있는 사랑을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사랑한다. 영혼이 닿아있는 사랑을 사랑한다.- 동감이다.
나는 장미와 카라와 아이리스를 좋아하나 작고 애잔한 꽃도 사랑한다
나는 산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패랭이와 금계국과 소국과 후리지아와 하르륵하르륵 눈 내리 듯 날리는 벚꽃의 분분한 낙화를 좋아한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술을, 아니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술을, 아니 술이 몸에 퍼지는 느낌을 좋아한다.
나는 노래하기보다 노래듣기를 좋아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
나는 노래하기를 즐기고, 춤추는 것도 흥겨워하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 인지라 여러 사람과 함께 춤추는 것은 좀 쑥스러워 한다.
나는 책과, 책 속의 사람들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찬 음식보다 따뜻한 음식을 좋아한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을 두고 아들과 다투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나는 자장면보다 칼국수를 좋아하며 피자를 먹느니 굶는 걸 좋아한다.
나는 자장면보다 칼국수를 좋아하며 피자도 퍽 좋아하나 파전이나 김치전을 더 좋아한다.
나는 사치함을 좋아하나 청바지도 좋아하고 커다란 가방을 좋아하고 그 가방을 메고 하는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나는 사치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멋내는 것을 즐기는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으며, 청바지를 가장 애용하며, 가방은 내 덩치에 어울리는 자그마한 것을 즐겨 든다. 그 백을 들고 촐랑거리며 시내 활보하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알기보다 오랜 사람을 좋아한다.
동감이다.
나는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불편한 걸 좋아한다. 정말 영양가 없는 성격이다.
나 역시 그러하니, 정말 영양가 없는 성격인가 보다.
나는 떠들썩한 사람을 싫어하고 정치인을 싫어한다.
나는 떠들썩한 사람에게 겉으로는 호응하면서 속으로는 싫다고 생각한다.
나는 계모임을 싫어한다.
나는 계모임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란 인간은 겉 다르고 속 다른 형인가 보다. 쩝!
나는 자랑이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 하늘 아래 사람으로 사는 한 자랑할 것은 없다.
나는 자랑이 많은 사람을 싫어하면서, 나 스스로는 은근히 자랑을 즐기는 경우가 있다. 점점 구제불능의 인간쪽으로 기운다.
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들키지 않으려 사돈의 팔촌 이름과 지위를 동원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들키지 않으려 사돈의 팔촌 이름과 지위를 동원하는 사람을 싫어하면서 은연중에 알고 있는 사람의 지위를 자랑스러워 할 때가 있다.
나는 어설픈 코미디를 싫어하고 늘어지는 늘 같은 드라마를 싫어한다
나는 누구라도 어설픈 코미디와 늘어지는 늘 같은 드라마는 싫어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름의 습도 높은 더위를 싫어한다.
나는 여름의 습도 높은 더위는 싫어하지만, 한여름 마당을 탈색시킬 듯이, 모든 것의 수분을 탈취하 듯이 쨍쨍 내리쬐는 땡볕은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형광빛을 띠는 색을 싫어한다.
나는 형광빛을 부담스러워 한다.
나는 은목걸이를 제외한 모든 장신구를 이젠 싫어한다.
나는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반지와 목걸이는 일년 내내 몸에 끼고 있다.(선물 받은 것이므로 의무감으로라도 끼고 있어야 한다. 언젠가 손이 부어서 잠시 반지를 빼고 있었더니,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며 경직된 표정으로 왜 반지를 뺐느냐고 남편이 물었다.)
나는 순대와 보신탕과 곱창과 건강음료를 싫어한다. 밥 먹는 것도 요즘 싫어한다. 먹는 것이 귀찮다.
나는 순대와 보신탕과 곱창과 건강음료를 좋아한다. 대신 멍게와 해삼과 개불과 전복회를 싫어한다. 누군가가 물었다. 너는 갯가에서 태어난 사람 아니야?
나는 단 음식을 싫어하고 그보다 신 음식을 더 싫어한다.
나는 단 음식도 좋아하고, 신 음식도 좋아하고, 쓴 음식도 좋아한다. 다만 신 과일은 싫어한다.
나는 공중도덕심 없는 태도를 싫어한다.
나는 공중도덕심 없는 태도를 혐오한다.
나는 자제력 없는 사람을 싫어하며 지치게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나는 자제력 없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지나치게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에게는 거리감을 느낀다.
나는 자신의 사랑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건 주로 사람의 타입이네)
나는 사랑 앞에서 정열적이지 못하는 사람을 뜨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내게 정열적인 사람에게는 뒤로 한발짝 물러서게 된다.
나는 크고 짙은 꽃을 끔찍히 싫어한다.
나는 나도 크고 짙은 꽃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벌레와 곤충을 싫어한다.
나는 벌레와 뱀을 싫어한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감탄한다.
나는 석달 열흘을 집구석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고 싶다.
......
나는 아무 말 안 하고 지내고 싶다
......
나는 아들이 성년이 된 후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고 싶다.
바람의 딸 한비야 씨처럼?
바람이 되어 떠나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꿈꾼다.
....노루꼬리만큼 남은 엄마의 인생을 내 개인적 용도로 쓰겠노라.
따라서 해보니 자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