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햇살*
2005. 6. 25. 11:40
전에 제가 얘기했지요?
아들은 여섯살 유치원 때부터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5년째인 올해 드디어 한 반이 되었다고......
그 애는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한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였지요.
시내에 있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인데 졸업식 행사 때면
2대 졸업상이라는 이름의 상을 줄 정도로 오랜 전통을 가진 유치원입니다.
흔히 그렇듯이 종교가 기독교인 부모들이 자녀를 많이 보내게 되는 관계로
그 아이 부모도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그 아이도 기독교인이고
저희는 저만 기독교인이고(비록 나이롱 신자지만.....^^)
아들도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동네가 아니고 먼 시내의 유치원까지 보내게
되었던거지요. 아들은 세살 적부터 다섯살짜리 얼굴을 하고 있고,
다섯살 적엔 일곱살짜리 얼굴을 하고 있고,
열두살인 지금은 중2짜리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얼굴엔 여드름이 숭숭, 코밑엔 수염이 거뭇거뭇,
키는 벌써 168Cm정도......
신체 성장만 앞서가는 줄 알았더니 정신연령도 훨씬 앞질러갔던지
여섯살에 벌써 '러브레터'라는 걸 쓰대요.
< 나는 네가 좋아.
사랑해.
(빨간색 하트 그려 놓고 그 옆에다
'이것은 내 마음'이라고 쓰고......) >
그 애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서 아연실색을 했지요.
'아니 누굴 닮아서 벌써부터 쬐그만 것이 사랑타령이야.
지가 사랑이 뭔줄 알아?'
그래도 아들의 입이 째지게 그 아이도 노란색의 하트를 그리고 이것은 내 마음,이라는
아들의 편지와 비슷한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고,
주변에서는 사윗감이 보낸 편지라고 놀리며,
아들이 보낸 편지는 앨범 속에 고이고이 모셔 두었다 그래서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예요.
아들의 마음은 7년동안 잠자고 있던 불씨를 건드렸던지
그만 마음이 몽땅 그 애에게로 가서 저만 보면 그 아이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엄마 그 애는 이런 버릇이 있다...그 애는 남자애들을 다 패고 다녀.....
수련회에서 그 애가 춤을 추는데 동작이 너무 작으니까
좀 이상해 보였어.....그 애는.....그 애는......"
기쁨에 들떠서 전해주던 말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 애는 내가 별로 안 좋은가봐......
엄마 그 애는 내 친구 성현이만 보면 웃어
......나 보고는 잘 안 웃어......나한테 관심 없나봐......"
상대해주던 저는 그만 은근히 부아가 나서 한마디 했지요.
"그럼 너도 좋아하지마! 너 좋다는 여자애 좋아하면 되잖아."
"괜히 얘기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가버리더군요.
지난주 토요일에 그 애 엄마와 만나게 되었어요.
"아휴! 나는 우리 아들 때문에 못 살아! 그 집 딸 얘기만 해요."
지금 그 여자애는 아주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아이와 사귄다나요.
조숙하기도 한 요즘 아이들, 커플링도 나눠끼고......
아들은 좋게 표현하면 너무 점잖고 나쁘게 표현하면 숫기가 없어서
별 표현이 없지요. 그 친구녀석은 매일같이
"나는 네가 좋아. 나랑 사귀어. 내 여자친구니까 넘보지마."
한다는데......
그 작고 어린 세계에서도 용감한 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쟁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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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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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반이 되었습니다.
얼마전, 학부모 공개 수업에 갔더니 내리 두 시간을 실과로 요리, 김밥을 싸더군요.
하필이면 또 키가 큰 애들끼리의 모둠인데, 그 여자아이와 한 모둠이더군요.
아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김밥을 척척 잘도 싸고, 그 여자아이는 덜렁덜렁 장난만 치고,
그 모습을 본 그 여자아이의 엄마가 아들이 참 맘에 드나봅니다.
그런데 그새 아들녀석의 마음은 바뀌었습니다. 자기 맘을 몰라주는 것이 야속했는지,
너무 남자 같아서 싫다나요. 그러면서도 그 아이와 연관지어서 놀리면 펄쩍 뛰는 것이
아주 잊지는 않은 것 같은데, 녀석 말로는 잊었다고 하니 알면서도 속아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