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까지 걸어가 보자
우리 집에서 세탁소까지 걸어서 1시간가량 걸릴 거라고 카카오맵이 알려줬다.
거기까지 가서 바지 찾고 올 때는 다른 길을 선택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돌아왔더니 2시간 반 가량 걸렸다.
걸음수는 1만 5천 보 정도.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해서 `금은화'라고도 부르는 인동덩굴의 꽃향기가 솔솔 풍겨왔다.
꽃 생김새 참 독특해!
하이! 나도 반가워 사진 한 장 찍은 후 살짝 경사도가 있는 길을 걸어 올라간다.
세탁소에서 바지를 찾아 가방에 접어 넣고 길을 건너 우리가 이따금 양꼬치와 양갈비를 먹으러 가는
독특한 상호의 흠달미식방을 지나 온양용화중학교 옆 장골근린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냄새.
어, 벌써 밤꽃이 피었다.
원래 양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흠달미식방의 양고기는 맛있다.
특히 양갈비는 육즙이 가득하여 맛있고, 밑반찬으로 나오는 짜샤이도 맛있고,
서비스로 주는 마파두부도 맛있다.
모두 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었는데 이 식당이 내 입맛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 입맛은 거의 비슷하여 주말이면 웨이팅을 해야 하므로
언제나 평일 저녁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 조금 이른 시간에 가곤 한다.
공원에서 이름이 생각날 듯 말 듯한 꽃을 만났다.
처음엔 물레나물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얘는 풀꽃이 아니고 나무잖아.
다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 집에 와서 도감 뒤지니 목본이고 물레나물과의 갈잎떨기나무의 `망종화'이다.
나는 아산에서 오래된 집들과 오래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온양동에 마음이 가장 끌린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구온양의 골목 골목을 걷다 보면
타박타박 꽤 긴 거리를 늘 걸어다녔던 내 성장기의 추억이 떠오르고
그때는 불행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이제 이만큼 나이 먹어 떠올려보니
꼭 불행과 슬픔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나간 추억은 모두 어느 정도 미화되어 그리움이 된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불행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모여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다고 만족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한두 집 건너 넝쿨장미 한두 그루쯤 예사로이 심어져 있는 동네였다.
가정집을 카페로 개조한 이 집은 휴무일이었다.
어느 골목으로 꺾어 들어 둘레둘레 살피며 길을 걷다가 이 집을 발견한 순간 너무 예뻐서 발길이 저절로 멈췄다.
마침 주인장이 나와서 전지가위로 식물들을 손보고 있었다.
주인장이 내 눈길을 의식하고 뒤돌아 보았다.
"너무 예뻐요!"
저 연분홍 장미(나는 연분홍으로 보았지만 사진에선 크림색으로 보인다)도 예쁘지만 담벼락조차 예뻤다.
주인장은 장미를 보고 예쁘다는 줄 알고서 지금 절정을 조금 지났다고 답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기꺼이 물러서줬는데 사진은 고작 이렇게 찍었다. ㅋㅋ
이 골목의 어느 집 담벼락 밑에선 앵두가 이렇게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먼 길을 돌아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따금 바람이 시원하게 한 번씩 불어와 땀을 씻어줬지만
1만 보를 넘어서니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며 다리가 무거워졌다.
오늘은 투표하는 날이라 군데군데 투표소만 몇 군데 지나치게 되는 날이었다.
우리 부부는 사전투표를 했던지라 남편은 1박 2일로 친구들과 대천해수욕장에 갔고 나 혼자 놀게 되었다.
중간에 작은아들이 전화해서 데이트 나가기 전에 전화했다며 내게 심심하겠노라고 했지만
나는 혼자서도 아주 잘 노는 유형인지라 전혀 심심하지 않다.
금계국 꽃향기가 코를 찔렀는데 그다지 좋은 향은 아니었다.
집 근처의 저 느티나무는 언제나 내 시선을 잡아끈다.
지금은 옥수수가 무럭무럭 자라는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