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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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가 줄리엣 비노쉬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보게 된 영화 <프라하의 봄>.
제목만 익숙했던 이 영화를 무심히 들여다보다가
뒤늦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로 만든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영화 내용과 무관한 소감 한 마디.
줄리엣 비노쉬가 참 예쁜 시절에 찍은 영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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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책을 뽑아 들었다.
읽다 말았다고 기억하는데 꽤 뒤쪽까지 밑줄이 그어져 있다.
97년 1월에 샀다는 메모가 뒷장에 있다.
내가 정녕 끝까지 다 읽었을까?
정말 기억처럼 읽다가 중간에 말았을까?
그때는 토마스가 이해 되지 않아 역겹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이 나이엔 그 심리상태를 곰곰이 헤아려보게 되었다.
- 영원한 재귀는 아주 신비스러운 사상이다. 니체는 이 사상으로 많은 철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그 언젠가는 이미 앞서 체험했던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 저녁 노을에 비치면 모든 것은 향수의 유혹적인 빛을 띠고 나타난다. 단두대까지도 그렇다.
- 그는 온세계가 여러 가지 대립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보았다. 빛-어둠, 섬세-난삽, 따뜻함-차가움, 존재-비존재 등. 그는 한쪽 극(빛, 섬세, 따뜻함, 존재)을 양으로, 다른 극을 음으로 생각한다. 그와 같은 분할은 너무나 쉽게 보이지만 한 가지 어려움을 동반한다. 즉, 어떤 것이 양이냐 하는 것이다. 무거운 것이? 아니면 가벼운 것이?
파르메니데스는 대답했다. 가벼운 것은 양이고 무거운 것은 음이다라고.
- 어떻게 해야 할지를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전의 삶과 비교할 수도 없거니와 이후의 삶에서 교정할 수도 없다 ······ 중략 ······ 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한다. 최초로, 준비 없이 체험한다. 미리 앞서 연습도 해보지 않고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와 같다.
- 이들 시간이 알지 못할 행복의 향기
- 누구를 동정하여 사랑한다고 함은 그를 진정하게 사랑하지 아니함을 일컫는다.
- 이 세월이 살제에 있어서보다 회상에서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 처음으로 그는 혼자 취리히 시를 산책하고 그의 자유의 향기를 호흡했다. 길모퉁이 뒤마다 모험이 숨겨져 있었다.
-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
- 동정보다 더 무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고통까지도 다른 사람과 함께,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 대신에 느끼는 고통처럼 무겁지는 않다. 이 고통은 표상력을 통해 수없이 많아지고 수백의 메아리로 연장된다.
- 그렇게 할 수밖에!
-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가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
- 자기의 육체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더 쉽게 육체의 희생이 된다.
- 오직 우연만이 메시지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필연성에서 발생하는 것, 예측할 수 있는 것, 매일 반복하는 것에는 메시지가 없다. 오직 우연만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준다 ······ 중략 ······
마술처럼 신비로운 것은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다.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자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
- 우리들의 일상은 우연의 폭격을 받는다.
-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구성한다. 이것은 더없이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 대학 공부를 한 사람과 독학한 사람을 구분짓는 것은 풍부한 학식이 아니라 생활력과 자신감의 차이다.
- 언제나 <보다 높이> 올라가려는 사람은 언제나 갑자기 현기증이 그를 찾아온다는 것을 계산하고 있어야 한다.
- 이국에서 사는 사람은 지면 위 높이 허공 속을 걷는 것이다. 가족, 동료, 친구가 있고 어렸을 때부터 익히 알고 있는 언어로 힘들지 않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곳인 자기의 나라가 제공해 주는 구조망이 그에게는 없다.
- 모든 여자가 여자라고 일컬어질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충실이 모든 덕목에서 최고의 것이라는 감정이 생겨났다. 충실은 우리들 삶에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충실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은 수천의 순간적 인상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 파아란 산들을 배경으로 한 이들 공동묘지는 자장가처럼 아름다웠다.
- 사람이 추적하는 목적은 언제나 베일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이 보다 더 오랫동안 함께 있었더라면 그들은 서로가 했던 말들을 아마도 이해했을 것이다.
-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괴로움을 낫게 해주기 때문이다.
- 그것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휘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 우리들 모두는 누가 우리를 보아주었으면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어떤 시선을 받고 살기를 바란다.
- 그가 여기로 온 것은 현실이 꿈 이상이라는 것, 훨씬 더 꿈 이상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였다!
- 물결 모양을 이룬 산의 능선은 멀리 사라졌다. 칭벡힌 저녁 하늘에 하얀 달이 떠 있었다.
달은 아직도 흐려지지 않은 하늘에 매달려 있었고......
- 인류는 마치 거머리처럼 소젖을 빨아먹고 산다. 인간은 소의 기생충이다.
- 인간은 이 지구의 소유주가 아니라 다만 관리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