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둘레길] - 수철리 둘레길(명막골)
- 5월 17일 금요일 9시
- 집결지 : 아산시 배방읍 고불로 23
- 경로 : 명막골 - 임도 - 광덕산 갈림길 (8km 3시간 ☆☆☆☆☆)
해발 600.9m 망경산 수철리 명막골엔 때죽나무 꽃과 쪽동백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망경산(望京山)의 지명은 `경(京)'은 한양 혹은 임금을 상징하여 나라에 상(喪)을 당하면
한양을 향해 망배(望排)나 망곡(望哭)하던 곳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내가 운동하러 다니는 행정복지센터 한켠에 서 있는 때죽나무.
향기 진하게 날리던 꽃들은 어느새 분분히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톡을 주고받은 후 어렵사리 다섯 명이 카풀을 하여 명막골로 갔다.
주차하기가 마땅찮은 곳만 카풀을 하여 이동하곤 한다.
`넙티'는 `높은 재'라는 뜻이라고.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수철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보산원리를 잇는 고개.
넙티는 각흘고개와 함께 온양-공주를 잇는 대표적인 고개로, 온양에서 공주로 가려면 넙티고개를 넘어 곡두재[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공주시 정안면 산성리]나 쌍령[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을 넘어야 했다. 고개 서북쪽 20리[약 8㎞]에는 온양군 관아가 있었다.
‘넙티’는 고갯마루의 폭이 비교적 넓어서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고갯길이 길게 늘어져서 ‘늘’ 또는 ‘느르’가 너르〉널〉넙으로 바뀌었거나, ‘높은 고개’라는 의미의 ‘높티(놉티)’가 ‘넙티’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 고개는 이순신장군이 넘어가신 `백의종군길'이기도 하다.
`백의종군'이란 흰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간다는 뜻으로
흰옷은 계급이나 권한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격을 의미하는 것이고,
평민의 신분으로 전쟁터에 나간다는 의미이다.
1597년 이순신이 파직당하고 백의종군을 떠날 때, 변씨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배를 관을 싣고 오다가 병사했는데, 이순신은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도 모자라, 임지로 떠나는 길이라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바로 떠나야 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의 이순신이 느낀 애통함은 난중일기에 잘 나타나 있다.
- 출처 : 나무위키
*백의종군이란
조선시대 무관의 징계 중 하나로, 직위와 권한은 없고 무관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군사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말한다.
* 이순신 백의종군길 : 이순신은 1597년 1월 일본의 재침으로 시작된 정유재란 초기에 선조의 출정 명령을 듣지 않았다 하 여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된 뒤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고문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이르렀다가 도원수 권율의 막하에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출옥하였다. 1597년 4월 1일 의금부에서 출발해 아산에 들른 뒤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을 거
쳐 경남 합천의 권율진영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이 가셨던 경로와 활동 범위 전체인 640여 km의 경로를 `이순신 백의종군
길'이라고 한다.
아산 이순신 백의종군길은 백의종군을 명 받고 한성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본가가 있는 아산에 들어온 1597년 4월
5일부터 다시 남행길에 나선 4월 19일까지 이순신이 지났던 경로를 말한다.
아산은 백의종군을 위해 내려가며 여러 날 동안 머문 유일한 곳이었다. 예정보다 오래 머문 이유는 여수에서 아산으로 올
라오시는 어머님과 가족들을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에게 그 보름 동안은 한 인간으로서 매우 힘든 나날들이었다. 여러 해 동안 전장에서 머물다가 오랜만에 집과 선산
이 있는 고향에 왔지만 죄인의 몸이었고 또 바로 떠나야 할 처지였다. 이순신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회한과 고뇌의 시기
였을 것이다. 게다가 하늘처럼 여기던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또 떠나야 했다. 효심이 깊었던
그에게는 억장이 무너졌던 통한의 시기였다. 그리고 결과적이지만, 이 시기가 이순신으로서는 생애 마지막으로 아산에
머물렀던 기간이 되었다. 아산에서 머물던 보름의 시기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시기였다.
* 아산시 지역에서의 이순신의 행로 중 백의종군길 3구간은 4월 19일에 백의종군을 위해 다시 남행길에 오르며 염치읍 백
암리 본가에서 출발하여 배방읍 수철리의 넘티를 넘은 뒤 천안 보산원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간 경로이다.
아산 지역 3구간은 본가에서 넘티고개까지이며 거리는 대략 13km이다. 이 길을 `구국의 길'이라 하였다.
때죽나무의 열매껍질에는 에고사포닌이라는 성분이, 종자에는 여러 종류의 글리세이드와 지방유, 에고놀 등이 함유되어 있다. 이 가운데 에고사포닌은 독성이 매우 강해서 옛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을 때 이 때죽나무 열매를 찧어 냇물에 풀어 물고기들을 기절시켜 떠올렸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 성분을 물에 풀면 기름때를 없애 주는 역할을 하므로 비누가 제대로 없던 예전에는 이 열매를 찧어 푼 물에 빨래를 했다고 한다.
영어 이름은 스노벨(snowbell) 즉 `눈종'이라는 뜻이니 이 또한 고운 이름이다.
꽃의 향기는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공해에 견디는 능력이 다른 나무보다 뛰어나다.
우리나라산 때죽나무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추위에 강함은 물론 병충해, 공해에도 아주 강한 특성을 보여 세계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출처 : 이유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
아산과 천안에 걸쳐 있는 산.
구아 대륙 원산의 귀화식물
누군가 저 벌통에 뱀 들어가는 것은 아니냐고......ㅠㅠ
낮잠 자는 중일까?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잎 위에 앉아 있는 이 나방이 자주 보였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 6~8월에 꽃피는 여러해살이풀이며
줄기 끝에 지름 5cm 정도의 노란색 꽃이 물레 모양으로 핀다.
5월 중순의 솜나물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산과 들의 풀밭에서 자라며 봄과 가을에 두 번 꽃피는 여러해살이풀.
봄에 피는 잎은 작고 갈라지지 않으며 솜털이 많으나
가을에 피는 잎은 매우 크고 깃 모양으로 갈라진다.
4월 초 진달래 꽃을 보러 갔던 고용산에서 보았던 솜나물은 이런 모습이었다.
이 나무 잎으로 떡을 싸서 찌면 서로 달라붙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해도 잘 쉬지 않아
특히 여름철에도 다른 떡보다 보관 부담이 덜한 편이라고.
특정 지방 사투리로 `망개나무'라고 불렀기에 `망개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은난초에 비해 키가 크고 털이 있으며, 잎이 더욱 길쭉하단다.
포엽( 잎의 변태로 싹이나 꽃봉오리를 싸서 보호하는 작은 잎)이 꽃차례보다 길다고 한다.
이번 둘레길 걷기는 이런 은근한 경사도의 임도를 쭈욱 걸어 올랐다가
소요되는 시간에 맞춰 어느 지점에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이 망경산엔 지금 쪽동백나무 꽃과 때죽나무 꽃과 아까시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다른 두 나무의 꽃과 달리 쪽동백나무 꽃향기는 조금 덜한 듯하다고 우리는 생각했지만
웬걸 식물도감에서는 때죽나무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향이 난다고 설명되어 있다.
꽃향기는 어느 순간에 가장 진하게 나는 것일까?
저 커다란 잎은 여름 동안 무지하게 커질 것이라고 한다.
마치 포도송이처럼 달린 쪽동백나무 꽃.
`쪽동백'이란 이름은 동백나무의 열매보다 작은 열매를 맺는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저기 왼편에 보이는 집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한때 주먹계를 군림하던 두목의 집이며 그 앞에 연못을 파서 배를 띄우려 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냥 맨땅 위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