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 꽃잎 흩날리는 길을 달려
친구들과의 모임을 위해 하루 전 날 서울로 가는 길엔 아까시나무 하얀 꽃잎이 떨어져
눈처럼 분분히 날리고 있어 꽃눈 오는 정취에 빠져들게 하였다.
언제나 늘 그러하듯이 12시에 종로3가에서 만났다.
한 친구는 독감이 걸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불참하였다.
그 친구가 우리를 일컬어 재미없다는 평을 날린 세 사람만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 변하였지만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어서 재미없다는 느낌을 주는 것일까?
하지만 남편은 재미없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리고 재미없는 셋이 모여서 너무나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고 우리 셋은 감격한 날이다.^^
늘 인사동으로 가던 것을 이번엔 동대문 쪽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광장시장에서 김밥, 순대, 떡볶이, 어묵을 먹고, 그 부른 배를 하고 수수부꾸미도 먹어줘야 한단다.
2대째 50년 된 원조 부꾸미 달인이란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받아 든 수수부꾸미는 맛있었다.
원조는 2,500원, 옆 집에선 2,000원. 그래도 원조를 먹어봐야지로 의견일치.
오랜만이어서 반가운 청계천.
일요일이라 쉬는 곳이 많다.
헌책방 거리의 한 책방에서 원래 여섯 권짜리 시리즈라고 하는데 나는 세 권만 사게 되었고,
택배로 받게 되는 친구는 모두 다 사게 되었단다.
저 하얀 건물 독특하지 않니?
우리 동대문을 보러 갈까?
그런데 우리는 왜 동대문이 이토록이나 반가운 것일까?
왜 감격스럽지?
대한민국의 보물 제1호. 서울 성곽의 동쪽에 있는 대문으로,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 불린다. 2008년 숭례문이 불타 소실되면서, 도성 사대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축조된 원형을 지키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에 소재한다.
역사
조선 초부터 창건하기 시작해 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다. 지대가 낮아 땅을 돋운 후 건설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성문을 건립할 때보다도 오래 걸렸다고 한다. 축조 당시 성문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다. ‘흥인(興仁)’이란 어진 마음을 북 돋운다는 뜻으로, 유교사상의 덕목인 ‘인(仁)’을 의미한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인문이 크게 손상되어 정비할 때에,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비어있다고 하여 ‘지(之)’자를 넣어 무게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등 현판이 세 글자인 다른 도성의 사대문과 달리 네 글자 현판을 달게 되었다.
완성된 지 50여 년이 지난 1451년(문종 1)과 1453년(단종 1)에 일부 보수작업이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1868년(고종 5)에 1년 동안 전면적인 개수 공사를 진행해 1869(고종 6)에 완공되었다. 한편, 일본이 1934년에 본래의 이름인 흥인지문이 아닌, 동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하면서 동대문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1996년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흥인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건축 양식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성문으로 국보 제1호인 숭례문과 비교하면 전체 모습과 규모는 비슷하되 화려함에 비해 웅장한 느낌은 덜하다. 특이하게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문 밖에 반달모양의 옹성을 둘렀으며, 옹성 위에는 방어에 유리하게 여장을 쌓았다. 아래층의 모서리 4기둥이 그대로 위층의 바깥기둥이 되는 합리적인 구조이며, 장식이 많고 섬세한 다포계 공포(包) 형식은 조선 후기의 조형을 보여준다.
서울의 풍수에서 볼 때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駱山)이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에 비해 빈약하다 하여, 이를 보강하기 위해 꾸불거리는 산맥의 모습을 한 '지(之)'라는 글자를 이름의 중간에 넣은 까닭에 다른 성문보다 1자(字)가 많은 4자의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반달형의 옹성도 같은 이유로 문 밖에 설치되었다. 조선 후기 다포계 성문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 출처 : 다음백과
그래서 동대문을 찍고 또 찍고.
새들로 인한 단청 훼손 방지용인 것 같은 그물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나 성장기 땐 분명히 시내버스가 동대문을 한 바퀴 돌았던 것 같은데 이제 한쪽은 광장이다.
외국인 관광객도 무지 많았다.
우리 저 멀리 보이는 성곽길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자!
그래, 그러자!
마음이 딱딱 들어맞아 더욱더 신나던 날.
그렇지만 목도 축이고, 다리도 잠깐 쉬어주자.
성곽이 보이는 커피숍에서 시원한 음료 마시며 잠깐 휴식 타임.
이 금싸라기 같은 땅은 모양새가 이상하여 방치되고 있는 것일까?
고양이는 그 폐가 지붕에 앉아 망중한.
우연히 찍힌 새 한 마리.
성곽길에 오르다 말고 뒤돌아본 동대문에 또 감탄!
멀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보이네.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남산타워도 반갑고.
중소도시로 내려가 살다 보니 새삼스럽게 서울 구경도 참 신난다.
전날 아산에서 올라와 서울로 들어서서 한강을 지날 때 반포대교를 건너게 되었다.
그때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아마도 한남동이나 이태원동이지 않을까 짐작되는 동네를 보며
아름답다 감탄했는데 이 날 이 풍경을 보며 또 멋지다고 감탄하게 되었다.
성곽 아래 아기자기한 집들과 골목 풍경.
나중에 엄마에게 보여드렸더니 서울도 이런 데가 있냐고 물으신다.
옛 향수 모락모락 피어나는 동네.
어느 해설사분 인솔 아래 청년들과 중년 몇이 성곽길을 돌던데
나중에 신청해서 가을에 우리도 설명 들으며 이 성곽길을 제대로 한번 걸어 보자네.
우리가 오래전에 와서 낙산공원으로 올라왔던 길을 이번엔 내려가서 대학로로 간다.
홍덕이밭
Hongdeogbat (Field)
낙산 아래 동숭동에 있던 밭으로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한 뒤 효종(당시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심양에 있을 때 따라가 모시던 나인 홍덕이라는 여인이 심양에 있으면서 채소를 가꾸어 김치를 담가서 효종에게 날마다 드렸는데 볼모에서 풀려 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 홍덕이의 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이에 효종은 낙산 중턱의 채소밭을 홍덕이에게 주어 김치를 담가 대게 했다 하여 낙산에 "홍덕이 밭"이라는 지명이 전해진다.
이 근처 어디쯤에서 친구가 옷을 하나 사고, 태국 음식점에서 팟타이와 나시고랭을 먹었다.
역시 향신료 맛이 강해!
저녁 먹는 동안, 캄보디아에 8박 9일로 여행 갔던 작은아들이 귀국했다고 문안 인사 전화가 왔다.
캄보디아는 지금이 우기여서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단다.
음식은 베트남과 비슷하여서 먹을만하였단다.
어슬렁어슬렁 대학로를 거닐어 마로니에 공원으로 왔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자~
혜화역에서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친정집에 왔네.
내가 제일 빨리 도착.
그다음 송파 도착, 마지막 화곡 도착.
참 즐거웠다고 카톡을 주거니 받거니로 마무리한 하루.
간 김에 겸사겸사 닷새를 머물다 내려오는데도 서운하다는 울 엄마.
엄마와 노는 며칠도 나름 좋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