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4월의 밤
좋은 계절에 들어 있는 남편의 생일을 맞이하여
큰아들 부부와 작은아들이 내려와 모두 다 함께 모나무르에 갔다.
이번엔 코스로 시켰는데 음식 한 가지 먹고 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먹고 하다 보니 식사하는 데만 장장 1시간 반이나 걸렸다.
나중에 계산할 때 들은 얘기로는 예식 단체 손님들이 있어서 좀 더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식사 후에 모나무르를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큰아들 부부가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그 모습이 예뻐 보이고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 예전 나의 시대와 비교하는 마음이 살짝 올라온다.
젊은 날, 내 남편은 이조시대 남자 같은 사고방식이 있어서
친지들이나 친구들 속에 섞여 걷노라면 내외하기 바빠 나를 소 닭 보듯이 했다.
처음엔 그런 남편이 이상했다가 나중엔 그러려니 체념했는데도 불구하고
가끔은 서운한 마음이 들며 때론 그 서운한 마음이 지나쳐 얄밉기까지도 하였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큰아들은 밥 차릴 때도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차리고,
설거지할 때도 나란히 서서 며느리가 설거지를 하면 큰아들이 마른행주로 닦아서 정리를 한다.
과일을 먹을 때도 포크를 먼저 며느리에게 건네주는 무심한 듯 사소한 자연스러움에 놀랐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가장 먼저 며느리를 배려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며느리가 외국 사람이다 보니까 더 그렇게 되는 점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거기다 더하여 아들만 둘 키운 나는 습관처럼 혹은 아직까지는 아들이 더 편한지라
며느리보다 아들을 더 먼저 불러 일을 시키게 된다.
식탁 닦아라, 식탁 매트 놓아라, 수저 놓아라, 반찬 덜어 놓아라......
아들은 아들대로 결혼 전엔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다가 깨워야 일어나서 눈 비비며 아침 먹으러 나오곤 했는데,
이젠 깨우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 세수까지 말끔하게 마친 후에 뭘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어서
나이 들어 처지며 가늘어진 내 눈을 젊은 시절의 눈처럼 동그랗게 뜨게 만들곤 한다.
우리 남편은 시댁에 가면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고,
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방에 얼씬거리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세대였다.
남편은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한 경험이 있어
음식을 아주 못하지는 않는지라 집에서는 가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내 주변에서는 우리 세대의 남자가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고
나를 엄청 부러워하며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 남편이었지만 밖에 나가기만 하면 절대로 다정해서는 안 되는 일인 듯,
그런 일은 아주 큰 일이라는 듯 무심한 남자로 돌변해서 더 서운함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세상이 바뀌어서 조금 더 여자가 대접받게 되어 참 좋은 것 같다.
그래도 며느리의 본분이 있어서 어떤 부분은 딱 며느리 몫이 되긴 하지만......
이번엔 아들들이 코냑과 복순도가의 손막걸리를 사 와서 밤에는
다섯이서 술을 마시며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수다의 꽃을 피웠다.
목련꽃 뽀얗게 피고, 벚꽃이 흔한 표현처럼 팝콘 터지듯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고, 개나리도 노랗게 피어 있는
좋은 밤, 흐뭇한 밤, 웃음이 하하 호호 까르르까르르 넘치는 참 기분 좋은 밤이었다.
온통 가지가 구불구불, 참 신기한 나무의 이름표를 보니 <용버들>이라 달고 있다.
검색으로 찾아보니 바람이 불면 마치 용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구불구불한 것이 꼭 파마머리 같기도 한데 파마버들·고수버들·운용버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