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햇살* 2021. 12. 24. 20:31

 

이사 왔으니, 이사 온 동네가 바로 옆동네이긴 하지만 이 동네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 가만있을 내가 아니다.

동네 산책에 나섰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대로변에 있던 지난번 집과 달리 안쪽으로 좀 더 아늑하게 자리 잡은 곳이라

보이는 풍경이 조금 더 아기자기한 것 같다.

 

주변에 과수원이 제법 많다.

과수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 눈에 어림짐작으로 복숭아와 사과, 그리고 배밭이 있다.

 

 

이곳은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다져놓았는지 모르겠다.

멀리 설화산이 보인다.

이 근처에서 가장 잘 보이는 산이 설화산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저 내가 알아보는 산이 설화산, 배방산, 그리고 광덕산 정도이다.

 

역시나 설화산은 어디서고 눈에 잘 뜨이고,

군데군데 과수원이 있고 그 가운데 몇 채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저 속에서 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디까지나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대낮의 생각이고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워지니 그 어둠을 내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랜 도회지 생활로 나는 대낮 같이 밝은 도시의 밤에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동네를 보고 나는 할머니 생각을 했다.

고향의 언덕배기에 자리한 작은 집에서 할머니와 나와 단둘이 살던 때.

감정 표현 별로 없는 할머니였고 불과 3년 함께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보다 할머니 영향을 더 받으며 성장했다고 가끔 생각한다.

 

 

허물어져 가는 집.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저 산의 이름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골프가 더 유행한다더니 이곳저곳 골프 연습장이 눈에 뜨인다.

 

지나다니며 동국사라는 절 이름을 보고 궁금증이 일었다.

일전에 가보았던 동명의 군산의 동국사를 떠올렸나 보다.

내 언제 한번 가봐야지 벼르다 오늘에야 와본다.

 

한참 인적 드문 길을 걸어 들어갔다.

 

이 사진은 줌으로 당긴 거고, 멀리서 빨간 옷의 아주머니가 나를 신경 쓴다.

커다란 개 두 마리는 내가 가까워지자 컹컹 큰 소리로 세차게 짖는다.

나는 불자가 아니어서 절에 가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했던 절의 모습이 아니고,

게다가 개 짖는 소리도 걸려 여기서 그만 돌아섰다.

 

돌아서며 바라보는 설화산과 향수에 젖게 했던 마을.

 

 

요즘은 보기 드문 주택의 형태.

요즘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걸 느끼는 잣대가 시골집의 형태인데

얼마나 예쁘게 짓고 사는지, 이런 형태의 집은 아주 오래전 모습이란 걸 알겠다.

 

`노박덩굴'이 반갑다.

 

이 길의 끝은 결국 신정호이다.

반대편은 도심이고,

이 남산터널을 지나면 신정호가 나온다.

 

저 끝에 신정호가 있다.

이쯤에서 나는 돌아섰다.

오던 길을 돌아서 가는 길.

타박타박, 터벅터벅. 사부작사부작, 시적시적, 어슬렁어슬렁 걷는 길.

봄이 되면 내가 걸어온 이 길은 또 어떤 모습으로 치장을 하려는지.

어릴 적 길 위 어디에서고 그 끝은 바다였던 시골 고향 마을을 떠올리며

내 시선 끝나는 곳에 바다가 있으리라는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길을 걸으며 줄곧 바다를 보았던 내 어린 날과는 달리

설화산을 줄곧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