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방

화가의 러브레터

눈부신햇살* 2021. 12. 2. 09:00

 
한 달에 한 번꼴이나 2~3주에 한 번꼴로 작은아들의 집에 잠깐씩 들르게 된다.
들린다고는 하지만 집 앞에서 얼굴 보고, 말 몇 마디 나누고,
반찬 건네주고 이내 돌아서는 형식이다.
 
한 달에 한번 갈 때는 중간에 아들이 집으로 다니러 오는 때이니
어쨌거나 2주에 한 번씩 아들 얼굴을 보는 셈이다.
 
가져다주는 반찬이라야 제육볶음 잰 거나, 소불고기 잰 거, 엘에이갈비 잰 거나 돼지갈비찜 등 고기 종류 하나에
우엉이나 연근조림 중의 하나와 멸치볶음이 번갈아 갈 수 있고,
나머지 나물 종류는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그때 집에다 가져다 놓을 무게 있거나 부피가 큰 물건들을 우리에게 건네는데
이따금 책보따리가 올 때가 있다. 그중에서 뭐 읽을만한 게 있나,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책이
<내가 사랑한 화가들>이다.
 
도슨트 정우철 씨가 펴낸 책인데 화가와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글이 실린 순서는
1. 유한한 삶에서 변치 않는 사랑을 바랐던 마르크 샤갈
2. 색채의 혁명가, 야수파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
3. 매 순간 불타올랐던 보헤미안 예술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4. 민족을 위해 그림을 그렸던 프라하의 영웅 알폰스 무하
5. 고통으로 그려낸 의지의 얼굴 프리다 칼로
6. 과거와 현대를 동시에 간직한 모순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7. 물랭루주의 밤을 사랑한 파리의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레크
8.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실과 투쟁을 기록한 케테 콜비츠
9. 원시의 색을 찾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폴 고갱
10. 죽음으로 물든 파리의 민낯까지 사랑한 베르나르 뷔페
11.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본 비운의 천재 나르시시스트 에곤 실레 
 
프리다 칼로의 고통스러운 삶이야 영화로 봐서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화가들의 삶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다가
이참에 좀 더 자세히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중 특히 황금빛 노란색 그림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 편을 보다가
그만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는데 27년을 함께한 연인 에밀리 플뤼게에게 보낸 편지에서였다.
 
그림을 잘 그렸던 클림트에게는 악필이라는 허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클림트는 평소엔 거의 글을 쓰지 않았는데 에밀리에게 보낸 편지는 약 400통이 넘었다고 한다.
그중 아래의 이 편지.
 

 
나무에 빨간 사과가 아닌 하트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 밑에는 "꽃이 없어 꽃을 그려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고.
하지만 클림트는 사망 후 친자 확인 소송만 14건이었다고 해서 놀랐다.
참고로 클림트는 그리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다는데 아마도 여자의 심리를 잘 꿰뚫어 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묘하게도 많은 화가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데
특히 프리다 칼로의 삶은 영화를 보면서도 안타까움이 그득했듯이 책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 정물화의 수박에 그려진 <비바 라 비다>라는 글씨를 보면서 
마음이 더 뭉클해졌다. 그렇게 험난한 인생의 끝자락에서도 "인생이여, 만세!"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