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계룡산에 오르다
계룡산은 충청남도 남동부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45m이다.
대전광역시와 공주시 • 계룡시 • 논산시에 걸쳐 있으며,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솟은 산으로 상봉 · 연봉 등 높은 봉우리가 솟았다.
196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산은 줄지어 늘어선 봉우리가 닭의 볏을 쓴 용과 같다 해서 계룡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여러 가지 동물과 나무가 많고, 계곡마다 소와 폭포가 절경을 이룬다.
계룡 팔경은 대표적인 명소인데 제1경은 계룡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의 해돋이로 그림 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제2경은 삼불봉의 눈꽃이며, 제3경은 연천봉에 지는 해로 천황봉의 해돋이와 견줄 만하다.
제4경은 관음봉의 구름이며, 제5경은 동학사 계곡의 신록이다.
제6경은 갑사 계곡의 단풍이고, 제7경은 은선 폭포의 운무로 폭포 앞의 기암절벽이 볼 만하다.
제8경은 남매탑이라고 불리는 청량사지 쌍탑에 뜨는 달로, 숲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매우 아름답다.
이밖에도 곳곳에 아름다운 경치가 많으며, 동학사 · 갑사 등의 절과 암자도 많아 사람이 즐겨 찾는다.
갑사 삼신불괘불탱(국보 298)•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299) 등 국보 2점과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부도(보물 제257호), 동종(보물 제478호)을 비롯한 보물 6점 등 문화재가 많다.
계룡산은 삼국 시대부터 백제의 명산으로 꼽혀 왔으며, 조선 시대 초기에는 새로운 도읍이 들어설
예정지가 되기도 하였다. 기슭 곳곳에는 토속 신앙이 이루어져 있다.
- 학습그림백과에서 발췌
계룡산에는 다섯 번째 오는 것이며, 그중 갑사에 두 번 갔고, 동학사 쪽으로는 세 번째다.
30여 년 전 남편과 연애하던 어느 가을날, 계룡산에 왔다가 차 시간에 쫓겨
산에 오르다 말고 중간에서 아쉽게 돌아서 내려와 산 초입의 계곡가에서
잠시 동동주를 마셨는데 안주는 뭐였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바람이 불 때면 바람에 팔랑팔랑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던 낙엽 지던 풍경과
나를 보고 내내 미소 짓는 표정이던 그날의 남편 얼굴만 떠오른다.
동학사에 두 번째 온 건 불과 삼 년 전인데, 시댁에 추석 쇠러 가면서 잠깐 들러 동학사만 보고 갔다.
큰아들은 바빠서 못 오고 작은아들과 셋이서 들린 동학사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웬일인지 남편과 나만 환히 웃고 있다. 그때 작은아들은 별 감흥이 없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닌다는 표정이 사진 속에 역력해서 사진을 보고 놀랐다.
갑사 쪽은 아이들 어릴 적에 가족끼리 한번 다녀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지난해에 단풍 구경하러 갔었는데 올해 동학사 쪽으로 가면서 느낀 건 단풍 구경은 갑사 쪽이 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등산을 목적으로 계룡산에 갔다.
계룡산에 다섯 번째 오면서 비록 남매탑까지 이긴 하지만 등산다운 등산은 처음이다.
맨날 208m인 동네 뒷산에만 오르다가 아주아주 오랜만에 800m 가까이 되는
산에 오른다는 기대를 갖고 등산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산 쪽으로 가면서 보니 이렇게 하천을 깔끔히 정비했다.
저기 계룡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천황봉(845m)이 보이는데 군사시설 때문에 그곳에는 오를 수 없다고 한다.
벌써 단풍의 시절은 갔다.
나뭇잎은 떨어져 일부 사람들의 발에 밟혀 바스러지고.
그래도 동학사 일주문 근처는 아직도 알록달록하다.
주위에 학바위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는 동학사 근처를 지나려니
그래도 작은아들과 걷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다리 위에 서 있을 테니까 얼른 찍어!
산에 오르면서 땀 꽤나 흘렸다.
바위와 돌들이 많은 산이라 행여 미끄러질까 봐 조심스럽다.
이 구간은 꽤 가파르다.
그래도 오랜만에 등산다운 등산을 하는지라 기분만은 날아갈 듯하다.
남매탑, 다른 이름은 청량사지 쌍탑.
청량사지 5층 석탑은 정림사지석탑을 모방하였고, 청량사지 7층 석탑은 미륵사지석탑을 모방하였다고 한다.
남매탑에는 탑이 세워진 내력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신라 성덕왕 때 상원조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불공을 드리고 있는데
호랑이가 찾아와 입을 벌리고 우는 소리를 내었다.
스님은 호랑이의 목에 걸려 있는 큰 뼈다귀를 빼주었는데, 호랑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져 버렸다.
얼마 후 호랑이가 스님을 태우고 어디론가 달려갔는데 거기에 실신한 처녀가 있었다.
스님은 그 처녀를 암자로 데리고 와서 간호를 하였다.
얼마 후 정신이 든 처녀는 자신이 상주에 사는 임진사의 딸인데
혼인날에 호랑이가 나타나 그만 기절을 하였는데 이곳까지 왔다고 하였다.
스님이 호랑이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자 처녀는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하며
부부의 연을 맺기를 청하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상원조사는 흔들리지 않고 함께 수도에 정진하자고 하며 거절하였다.
그 후 스님과 처녀는 의남매를 맺고 불도를 닦으며 일생을 보냈는데
후에 상원조사의 제자 회의화상이 두 개의 불탑을 세워 그 뜻을 기렸고,
사람들이 그 탑을 오누이탑이라고 불렀다.
탑의 정면에서 보면 1개의 탑으로 보인다.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을 탑에다 풀었나, 탑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이곳 탑 옆 조금 넓은 공간에 휴식처가 마련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쉬어가는 곳인가 보다.
물도 마시고, 간단한 간식거리도 먹으면서 재충전하는 시간.
우리도 산 밑에서 사 가지고 올라간 군밤을 까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남매탑 밑으로 상원사가 있는데 그곳을 찍지 않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600m가 조금 넘는다는 이곳 남매탑을 끝으로 하산하였다.
능선을 타고 산을 돌아야 진정한 등산의 맛이거늘, 게다가 아직 체력도 남았는데 내려오자니
아쉬움이 그득하지만 남편의 허리에 무리가 가니 어쩌겠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도 무지 감사할 일이다.
이런 순간에 더 절실해지는 생각은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매 순간에 늘 조심할 일이다.
내려오다가 어느 일행 중 한 명이 다리를 삐끗해서 그 사람을 빙 둘러싸고 걱정하면서
구조를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돌과 바위가 많아서 자칫 잘못 디디면 삐끗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스틱을 짚고 산에 오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거의 산 밑까지 다 내려왔을 때 119 구조대원들이 4인 1조로 들것을 들고 부리나케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몇 년 전 동네 뒷산에서 미끄러지며 다리를 삐끗해서 남편 등에 업혀 내려와
큰아들에게 태우러 오라 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 다리 접질린 것이 다 나은 것 같다가도 어떤 순간 그 발목에 통증이 오기도 하며
온전히 회복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때 생활하는데 어찌나 불편하던지 건강의 소중함은 물론이고, 늘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곳 남매탑에서 조망이 트이는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은 더 가파른 철계단이 이어진다고 한다.
다음에 와서 능선을 타고 산을 돌아보자고 하는데 그건 그때 가봐야 알겠지.
세상이 맘먹은 대로, 계획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닌지라 어찌 될지 알 수 있나.
일례로 운동신경 빼어난 남편의 허리가 이렇게 탈이 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나......
오래전 북한산의 바위 로프를 잡고 비봉을 올라 사모바위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던 등산 추억을 끝으로
등산다운 등산을 한 적이 없어서 오랜만에 이런 덩치 큰 산에 오면 느껴지는 특유의
깊은 산속 풍경을 보며 좋다, 좋다를 연신 내지른 날이다.
젊은 날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산악회 회원들과 우르르 산에 몰려다니던 기억들도 새록새록 솟아나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