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 최소한의 운동량을 채우려고 길을 나섰다.
몸이 어딘가 고장 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불편하고, 짜증 나고, 뭘 해도 기분이 썩 좋지 않으며
맛있는 걸 몇 번이나 먹으며 흡족해하고,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감탄하며,
예쁜 옷을 사 입고 즐거워할 돈이 깨진다.
오래 사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고
통증 없이 즐겁고 상쾌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이다.
7개월 전이었나. 코로나로 인해 헬스장에 갈 수 없게 되자 홈트레이닝을 하겠다고
남편이 간단한 운동 기구를 하나 샀다.
8년 동안 하던 헬스를 못하게 된 나도 이따금 그 기구에서 깔짝거렸다.
걷기 운동만으로는 성에 안 찬 데다가 그래도 내가 8년씩이나 헬스를 했던 사람인데, 라는 자만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느 날 그 기구에 매달렸다가 바닥으로 내려서면서 판단을 잘못해서 떨어지듯 내려서며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다행히도 엎어지진 않아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왼쪽 어깨 부분의 통증이 어찌나 심했는지
입이 떡 벌어지며 한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 얼마가 지나자 서서히 통증이 가시고 정신을 차린 후
어깨를 돌려보고 앞뒤로 흔들어 보아 아무 이상이 없자 생각 밖으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얼마쯤 지난 후에 높은 곳에 물건이라도 올리거나 내릴라 치면 통증이 오곤 했지만 그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한 달 전쯤부터 팔을 뒤로 돌릴 수가 없는 통증이 생겼다.
팔을 뒤로 돌려 뭘 할라치면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정신이 멍해지고 내 뜻대로 팔이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나는 팔을 돌려 내 등 어디라도 맘껏 긁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효자손으로 등을 긁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이었는데 팔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갑자기 등은 또 왜 그렇게 자주 가려워지는지 이래서 효자손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물론 내게는 언제나 등을 긁어달라고 말할 수 있는 남편이라는 효자손이 있었지만
내 손으로 내 등을 벅벅 맘껏 시원하게 긁고 싶었고, 어깨의 통증이 통증으로 끝나지 않고
더 큰 병으로 발전할까 염려스러워 정형외과를 찾았다.
예전에 지인이 팔이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다가 회전근개파열이란 진단을 받고 수술했던 것까지 떠올랐다.
소도시에 살수록 자기 차가 필요하다더니 병원은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었고,
소도시라서 한산할 거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붐비던지, 특히 월요일이라 더했을 테지만 진료 접수하고서 2시간 후에나 의사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내 팔을 돌려보고 엑스레이를 찍더니 의사는 오십견, 유착성 피막염이라고 진단을 내렸고,
일단 주사 맞고, 약 먹고, 물리치료 3주 받고 나서 결과를 보자고 하였다.
사실 정형외과가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인가는 고개를 숙이면 손끝이 짜르르 전기가 오는 것 같은
목디스크 조짐이 보여서 어깨 부분의 등에 물리치료를 두 달 넘게 받았었고,
팔꿈치 엘보 통증으로 또 반년 정도 물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서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이 아주 낯익다.
그 익숙한 물리치료실과 치료과정을 부위만 다를 뿐 또 받게 되었다.
치료받는 과정에서 새삼스럽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어깨의 상태가 더 심각하여서 놀랐다.
물리치료사가 내 팔을 잡고 회전을 시키거나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면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병원에 가기 전에는 나는 단지 뒤로 왼팔을 돌려 어떤 자세를 취할 때만
불편하고 통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는 감기도 잘 안 걸리고, 고혈압도 없고, 문제라면 단 하나 그렇게 신경을 써도 유전자 때문인지
공복혈당이 112로 조금 높게 나올 뿐(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하는 것도 있다)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이렇게 정형외과에 자주 가게 된다.
2주 만에 일산집에 와서 초록이 싱그러운 산책로를 걷자니 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오늘 내가 좋다, 참 좋다, 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