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맹씨 행단
맹사성 고택은 설화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배방산을 동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수백 년간 무사히 보존되어 온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옛 모습을 간직한 집이다. 고려 말 충신이던 최영 장군이 살던 집으로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가 된 맹사성에게 그 집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가옥의 형태는 "ㄷ"자형의 맛배집으로 목재는 광솔이 되다시피 그을렸으며, 기둥과 도리 사이에는 단구로 봉설(봉황의 혀)이 장식되었고, 내실 천정은 "소라 반자"로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반자다. 사적 제109호로 지정된 맹씨행단은 말 그대로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으로 맹고불의 고택, 구괴정, 쌍행수 등을 망라하여 "맹씨행단" 이라 한다. 맹사성은 이 은행나무 두 그루를 손수 심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가져왔어요.
정면 4칸, 측면 3칸의 `工'자형의
당대 재상의 살림집이라 믿기 어려운 작고 초라한 집이다.
중앙 2칸에 커다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을 둔 홑처마의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민가라고 한다.
집 뒤편에 있는 두 개의 굴뚝이 멋지다.
양반가의 고택이나 종가에서 볼 수 있는 조상을 모신 사당인 `세덕사'.
신창 맹씨의 선조인 맹사성과 그의 부친인 맹희도,
조부 맹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라고 한다.
아무도 없는 길, 나 혼자 씩씩하게 간다.
남편은 주차장에서 업무와 관련된 통화를 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맹사성 고택은 둘러보지 않았다.ㅎㅎ
마누라 보라고 데려다준 것이다.
세종 때의 정승인 황희, 맹사성, 권진이 느티나무를 세 그루씩 심었다고 하여 구괴정이라 이름이 붙었다 한다.
몇 그루인지 세어본다.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주차장의 남편에게로 간다.
나, 다 봤~어~요~오~.
잘 봤어?
넹~.
환히 웃으며 흡족해하는 남편,
고맙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했던 날이라 보이는 풍경에 감흥이 덜했던 날이다.
청명한 날에 바라보는 풍경과
미세먼지 뿌옇게 끼인 날에 바라보는 풍경은 말 그대로 천지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