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
길을 걸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나 복잡해질 때 걷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아무 일이 없고 아무렇지 않을 때 걷는 것은 더더욱 좋다.
걸으며 보는 소소한 풍경들이 그대로 내 가슴에 마음에 와 담기니까.
엄마네 집에 자주 가게 되었다.
그동안 다시 잠시 바쁘게 살다가 한가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이 터졌다.
왜 건강검진을 제때에 딱딱 받지 않느냐는 나의 성화에 6개월 전에 건강검진을 했다.
쓸개에 혹이 발견되고 혹시 몰라서 6개월 후에 다시 찍어보자며
결과를 볼 때는 보호자와 같이 왔으면 한다고 해
효도하는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그때 내 생각은 청력이 좋지 않고 다소 이해력이 떨어지는 엄마에게 잘 설명해주자였다.
그렇지만 일은 그리 간단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초음파 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며 수술해야 한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지라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동안 썩 건강하신 것도 아니지만...
마침 친정집 앞에 큰 종합병원이 있어서 엄마 편하시라고 그곳으로 갔다.
큰 병원은 그때그때 일이 착착 진행되는 곳은 아니어서
예약 날짜를 잡아 CT촬영을 했다.
초음파 검사에서 잡혔던 용종이 CT촬영에선 더 크게 보이는지 사이즈가 더 커졌고
수술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그곳은 코로나 지정병원이라 길게 입원할 수 없는 상황이고
혹만 떼어내는 간단한 상태가 아닐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엄마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은 붐볐다. 미로 같은 병원 내부.
예약을 하고도 진료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긴 대기 시간.
당뇨와 고혈압을 갖고 있는 엄마를 시술하기 위해 진행되는 많은 검사.
지금은 시술 날짜를 잡아 놓고 대기 중...
오늘 아침 걸려온 전화 한 통.
유방암 3기라는 아는 동생. 얼마 전엔 친구가 유방암 2기 수술.
3주 전엔 시외삼촌이 폐암으로 69세의 이른 나이로 돌아가시고,
2주 전엔 남편의 지인이 담낭암 말기로 판정받았다.
마음이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