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 4
여행 넷째 날, 오하라에 갔다.
대설이라더니 밤새 눈이 내렸다. 아침에 눈 떠 창문을 열고 기온 거리를 내다보니
지붕이 있는 회랑 같은 거리인 탓도 있지만 거리엔 눈이 흔적도 없고 지붕 위엔 눈이 반뼘쯤씩 쌓였다.
흠, 이게 뭔일이람. 우리나라에서도 눈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눈이 귀하다는 교토에서
때 아닌 눈구경을 하게 되네.
교토 기온거리 붐비는 곳 상가건물 2층에 복층으로 꾸며진 호텔에 묵었다.
하루 구경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설 때마다 내 집에 들어선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아마도 하루에 2만보 넘게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 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주는 편안함이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갔을 것이다. 가는 도중에 머리를 쉼 없이 방아 찧으며 졸았다.
가는 내내 교토의 가모강 옆으로 달리는데 강변에 눈 쌓인 풍경을 보았다.
그러던 것이 우리가 돌아오는 오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눈. 땅이 젖어있지도 않고 보송보송 말라 있어서 어리둥절했다.
종점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우리도 함께 따라 걸었다.
다른 때와 달리 현지인들이 많이도 왔다고, 왜 종점까지 현지인들이 올까, 생각하며 눈 쌓인 길을 걸어 올랐다.

부지런한 어느 분이 이른 아침부터 눈을 뭉쳐
입구에 친절하게도 만들어 놓은 포토존.
멋진 눈고양이.
너도 나도 찰칵, 찰칵!
단추와 눈은 네스카페 뚜껑.
입은 빨간색으로 박아놓은 센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때를 잘 맞춰왔을까?
눈이 정말 푸짐하게도 쌓였다.
눈이 떡가루 같이 습기를 조금 머금은 눈이다. 밟으면 감촉이 아주 좋다.


액자정원에서 다과를 먹으며 눈 쌓인 풍경을
사진엔 없지만 700년 묵은 잣나무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여기는 산젠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호센인. 산젠인 사진과 섞여 올라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발견. 20년 10월 5일)

처음엔 중간에 내리지 않고 종점까지 와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일제히 내릴 때
간밤의 대설주의보라는 눈 소식에 눈 쌓인 풍경을 보러 온 줄 알았다.
어묵국인 줄 알고 삶은 무 한 덩이가 들어 있는 국사발을 받을 때에도
소금간이 되어 있어 조금 짠 매화차를 줄 때에도 몰랐다.
여럿이 긴 의자에 나란히 나란히 앉아서 뜨거운 무 한 덩이를 먹는 기분이란.
남편이 말하길
" 무 한덩이를 이렇게 맛있게 먹어보긴 난생처음이네."

어쩌면 우린 이렇게도 때를 잘 맞춰왔을까?
올해 복은 떼어 놓은 당상인겨?

산젠인은 782년에서 806년 사이 세워진 천태종의 몬제키 사찰로 경내가 꽤 넓다고 한다.
키 크고 둥치 굵은 나무들이 쭉쭉 늘어서 있다.
대부분이 삼나무와 단풍나무라고 한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접어들었다.
오래된 일본가옥들이 정갈하게 들어서 있다.
어디에고 눈에 띄는 이끼들. 담벼락에도 지붕에도 나무에도 푸르거나 갈색인 이끼.


가게 앞의 눈도 말끔하게 치우고.



아이들 튀어나올 수 있으니 운전 시 조심하세요.

족욕카페.
신발 벗기 귀찮아서 통과.^^


통유리창 너머로 이런 풍경이 내다보이는 음식점에서 뜨끈한 우동을 먹었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코타츠가 있던 집이다.
<짱구는 못 말려>에서 봐서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라는데 마침 잘 되었다.
무엇보다 우동이 참 맛있었다. 유일하게 밑반찬이 따라 나왔던 집이다.
우엉과 당근을 볶았는데 심심하고 담백하니 좋았다.
그릇도 예쁜 집이었다.
옆에서 일본 여자 둘이서 각자 테이블 하나씩 차지하고 우동을 먹는데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그 조신함에 감탄했다. 나더러 그렇게 먹으라면 스트레스 좀 받을까?
습관이 무섭다.

붉은색 도리이가 줄 서 있는 후시이 이나미 신사에 가려고 전철을 탔다.
맨 앞 칸에 탔더니 저렇게 기관사가 운전하는 모습과 창 너머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버스는 우리보다 조금 작은데 내릴 때가 되면
보도의 높이와 맞춰지도록 살짝 기울어진다. 편리함을 추구한 섬세한 한 면이다.

우리가 자주 오가던 교토의 기온거리에 있는 가모강의 사진이 한 장도 없음에 놀랐다.
그 강의 다리를 지날 때면 이보다 더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데.
분명 한 장쯤 찍었던 것 같은데 어디로 갔을까?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지치고 힘들어 끝까지 가지 않았다. 저 도리이 터널이 산을 한 바퀴 돈다는데.
이곳은 무료입장이어서인지 정말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진입로 양쪽엔 먹거리 판매하는 곳이 잔뜩 들어서 있었고
건널목에선 아저씨들이 교통을 통제했다.

저녁은 기온거리의 맛집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어김없이 또 줄을 섰고, 식당 내부는 좁았으며 복층이었고 우리는 지층에서 먹었다.
맛은 이제껏 내가 먹은 돈까스 중에 최고였다.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서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고루 들려왔다.
다음날 6시에 일어나 8시 40분발 공항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쯤 달려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못다 산 선물 몇 가지 사고 10분 연착된 1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작은녀석 친구 중의 하나는 유럽행 비행기 안에서 고막이 터졌다더니
나는 귀가 찡하게 아파왔다. 착륙할 때쯤 되니까 귀가 뻥 뚫리면서 아픔도 사라졌다.
작은녀석이 그랬다.
돈 주고 하는 것 중에 여행이 가장 두고두고 아깝지 않은 소비라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거리, 그 풍경, 그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바쁜 일상들이 이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 후
각자 제 방에 들어가면 얼굴 보는 것도 드문데 넷이서 하루 종일 붙어 복닥대며 여행하는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