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일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내가 쓰러지는 일이 생기리라곤 정말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지난주에 유난히 피로감을 느끼긴 했다. 그래도 내 맘이 운동하기 싫어서 꾀를 내는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하는데 귀가 찡하면서 멍한 기분이 잠깐 들긴 했다. 잠깐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곧 멀쩡해지길래 마저 운동을 마치고 상쾌하게 돌아왔다.
금요일 저녁이라 돌아온 남편과 빈대떡과 잡채에 막걸리를 한 병씩 마시고 난 후 전기장판의 온도 올리고 따뜻하게 앉아서
텔레비전 보다가 잠깐 졸았다(원래 술 마시면 졸음이 쏟아진다). 그러다 <꽃청춘>을 보러 거실로 작은아이가 나오고
나는 갈증이 나길래 날고구마 하나 깎아먹으러 일어서서 주방으로 가 감자칼로 고구마를 깎다가
갑자기 속이 메슥거린다는 생각이 든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눈을 떴을 때 나는 119구급차에 실려가고 있었다. 벌써 그전에 의식이 돌아왔다는데 나는 그 부분부터 띄엄띄엄 생각이 난다.
기억에 없지만 CT촬영도 했다하고 링거를 꽂은 채 병실로 이동했다. 집과 가까운 병원이고
현금인출기가 있어서 이따금 들르기도 하고 건강검진도 받는 병원인지라 꽤 익숙한 병원이지만
입원은 처음이다. 병원 앞을 지날 때나 들를 때면 구급차에 실려온 상황을 볼 때가 있다.
어쩌다 저렇게 급하게 실려왔을까? 하던 의문의 상황을 내가 직접 연출하고 있네,
이동침대에 뉘여 실려가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쓰러지면서 뒷통수를 다쳤다. 일주일간 입원해야 한단다.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하고 혈압을 재고 생전 처음 MRI도 찍었다. 모든 것이 양호했고 2년 전 건강검진 때 다소 높다고 나왔던
혈압조차도 120에 70으로 아주 양호했다. 나는 왜 쓰러진 걸까?
막걸리를 다른 때보다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다음 날 MRI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서 의사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알 수 없다고 하신다.
빈혈도 없단다. 그럼 왜?
입원해 있으면서 회진도는 간호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때 그 간호사가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줬다.
<실신>
피로한 데다 술까지 마셔서 핑하고 순간적으로 돌아간 거란다.
아하!
그런데 운이 없게 넘어지면서 식탁에 부딪혀 뇌진탕을 일으킨 거다.
퇴원한 지 나흘째인 지금 후유증으로 많이 고생하고 있으며
당분간 막걸리나 와인이나 소주는 쳐다보기도 싫다.
맑은 날이면 우리집 거실에서 바라다 보이던 정발산 4분의 1 토막과
먼곳의 계양산을 이제는 볼 수가 없게 되겠다.
고양시 꽃박람회 축제 뒷풀이로 하던 불꽃놀이도 볼 수 없게 되고.
온통 붉게 보이던 밤가시마을의 지붕들도 볼 수 없겠다.
32층짜리 아파트 12개동이 우리 시야를 막고 햇빛을 일부 가리며 들어선단다.
방법은 우리가 그 아파트로 옮겨 앉는 것밖에 없다.
일조권과 조망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피해를 보는 우리 아파트단지 10 개동 중의 4 개동 주민들이 데모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