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 경주와 부산
남편과 둘이 떠나는 세 번째 여행.
올초부터 벼르던 경주로 향했다. 길지 않은 2박3일인데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큰 맘먹고 만사를 제쳐두고 떠났다.
벚꽃 필 때 가보고 싶었는데 맘먹은대로 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이 포석정이었다. 실망스러웠다.
규모가 이리 작을 줄 몰랐다.
나는 경주가 초행길이고 남편은 순수한 관광으로는 처음이다.
안압지는 제법 볼 만했다.
하루 일정의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었는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좀 떨었다.
외국인들이 많아서 놀랐던 곳이다. 대릉원에서도 자주 외국인을 맞닥뜨리곤 했다.
경주에 처음 왔으니 당연히 첨성대의 실물도 처음 봤다.
반가운 마음으로 들여다 봤다.
첨성대에서 생전처음 보는 목화밭 지나고 반야월성쪽으로 가다가 발견한 석빙고.
센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본 분황사 석탑.
경주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오전에 보문관광단지 다음으로 찾아간 불국사.
이곳도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간 곳이다.
아, 불국사!
모두들 나와 같은 마음인지 불국사엔 발 디딜틈 없이 인파로 북적였다.
아, 다보탑!
생각보다 컸다. 역시나 반가워서 보고 또 보고.
아쉽게도 석가탑은 보수공사 중이라 유리칸안에 모셔져 있었다.
돌 얹으며 소망한 것들은 이루어졌는지요?
감포 쪽의 한적한 해안가.
남편과 내가 이구동성으로 한 말. 갈매기는 왠지 사나워 보여.
눈매가 한 눈매하지?
제주의 주상절리보다는 못하지만 부채꼴로 생긴 모습이 신기했다.
이곳 역시 사람들로 굉장히 붐볐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저래 모든 것이 좋아보이는 날이었다.
이틀째 저녁에 부산에 도착해 약 20여 년 만에 다시 보는 해운대.
옛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남편에게 주절주절 얘기를 늘어논다. 남편은 일 관계상 걸핏하면 오는 곳이라
이곳저곳 안내해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해운대에 나왔다가 그냥 들어가기 섭섭하여 해운대가 내려다 보이는 술집에 들어갔다.
부산에 도착해 놀란 것이 외국인들이 많아서였는데 그 술집에 한국인이라야 우리 테이블과 다른 한 테이블 딱 두 곳이고
나머지는 전부 외국인이어서 내가 외국에 나온 것도 아닌데, 라며 놀라워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럴 만한 날이었다.
해변에선 폭죽놀이 금지라고 안내방송이 나오더구만 이따금 한 번씩 불꽃이 솟아오르곤 했다.
참 말 안 들어, 혀를 끌끌 찼다.
해운대시장 안의 유명한 꼼장어집은 여전히 줄이 길게 늘어섰더구만 장어는 잘 먹지만
꼼장어는 왜 그토록 징그럽게 느껴지고 별맛 없다고 느껴지는지 먹기를 거부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엔 동백섬에 갔다.
이번엔 부산에선 먹는 음식들이 맛있었다. 이십여 년 전에 친구들과 왔을 때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애먹었었다.
시켜 놓고 한 술 뜨고선 입에 맞지 않아 못 먹고 나중엔 지레 겁 먹고 라면을 시켜 먹었었는데
하다 못해 라면까지 이상해서 그날 이후로 우리들은 한결같이 말했었다.
부산 음식 참 맛없어.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의 베프.
못 알아 들어서 풀어줬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
오래오래 이렇게 같이 친하게 지내요. 여보!
내가 사는 곳에선 먼 곳이라 차 막힐까봐, 도로위에서 시간 다 보낼까봐 동백섬을 끝으로 부랴부랴 서둘러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에 펼쳐지는 길가의 풍경들도 가을이 무르익어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곤 했다.
어찌 생각하면 봄보다 더 이쁜 가을!
다만 봄 지나면 초록이 무성해지며 활기를 띠기 시작하지만
가을 지나면 무채색의 계절이 시작되고 추워서 옹송거리며 종종걸음을 걷게 되고
흐린 날들이 많아지며 해가 짧아져서 하루가 무척 짧아지는 게 아쉬워지는 계절.
그래서 집안에 들어앉아 뒹굴거리기 좋은 계절이긴 하지만
또 그게 아쉽게 느껴지는 계절. 가을의 중간에서 겨울을 생각하게 되는 시점.
가을아, 가을아 더디 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