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또 하루

설날에

눈부신햇살* 2014. 2. 10. 21:33

 

 

1. 기대치

 

큰형님댁의 큰조카와 우리집의 작은녀석이 대학교 동문이 되었다. 다만 아쉽게도 큰조카는 작년에 코스모스 졸업을 해버려서

같은 캠퍼스 안에서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설에 우리 작은녀석을 보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ㅇㅇ야, 그 대학교가 아주 역사가 깊어. 좋은 대학교야. 잘 갔어."

옆에서 듣던 큰조카가 발끈했다.

"아니 할아버지는 저도 그 대학교 다녔거든요. 저에게는 그러지 않으셨으면서......

겨우 거기 갔다고 많이 아쉬워 하셨으면서......"

우리 부부는 옆에서 듣다가 웃음이 빵 터졌다.  웃다가 이렇게 다독거렸다.

"너에겐 기대가 많아서이고 ㅇㅇ에겐 기대를 안하셔서 그런거지. 그 차이야."

 

큰조카는 어렸을 적부터 영재라고 아이큐가 무척 높다고 기대가 컸다.

고등학교도 명문 사립고를 다녔고 그래서 서울대는 식은 죽 먹기로 들어갈 줄 알았다.

나중에 듣기로 고등학교 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느라고 큰형님이 꽤 애를 먹으셨던가보다.

작은녀석은 그런 시기가 없었던 것 같아서 어쩔 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왜 그러지?

 

 

2. 수상한 그녀

 

설에 시골에서 이틀동안 텔레비전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7번 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봤다.

식구가 많으니 마치 극장처럼 빙 둘러 앉아서 같이 공감하며 웃어가며 보는데

<7번 방의 선물>이 꽤 감동적이었다. 영화광이어서 보지 않은 영화를 꼽는 게 더 빠른 동서는

이미 본 영화인데도 내가 울면서 슬쩍 보면 같이 울고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이미 본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장소가 장소인만큼 여럿이 함께 봐서인지

눈물 훔치는 사람이 없는데 동서와 나만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런 동서가 내게 권한 영화가 <수상한 그녀>이다. 형님이 좋아할 거예요, 하면서.

 

설 다음날 올라와 심야에 상영하는 걸 볼까하다 피곤해서 다다음날 조조를 보자고 했다.

막상 다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7시에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는데 아침잠 많은 나를 배려해서인지

남편이 그 다음 것을 보자고 했다. 그러나 다시 누워 생각하니 그러면 또 하루가 어영부영 시간에

쫓겨 지나가게 될 것 같아 큰 맘 먹고 발딱 일어나 둘이서 시리얼 한 그릇씩 나눠먹고

마을버스 타고 시내에 있는 영화관에 갔다.

 

많아야 한 열 명이나 앉아서 보겠지 했는데 왠걸 오십명은 족히 되더라.

난생처음 조조할인이란 것도 받고 커피는 남편이 사서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다.

남편은 더러 혼자서도 영화를 보지만, 아이들도 이따금 보고 오지만,

캄캄한 극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결혼하고 나서 극장에 가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ㅋ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거의 다 집에서 봤다.

 

오랜만에 남편과 연애시절처럼 영화보는 것도 좋았지만

영화가 참 잘 만들어졌다. <써니>와 <광해>- 둘 다 집에서 다운 받아서 봤다 -에도 나왔던 배우

심은경을 이참에 다시 봤다. 어쩜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하며 표정이 많은지.

남편은 극장을 나오며 여배우가 썩 미인은 아니지만 사랑스럽더라, 고 했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미인은 아닌가? 하고. 난 참 예뻐보이던데.

예쁜 거하고 미인은 다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우리나라의 모든 할머니들은 브로콜리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과

늙으면 냄새 나고 느리다고 평하는 거였는데

고로 나는 늙어서도 절대로 브로콜리머리를 하지 않을 거며

잘 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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