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들녘
나는 자주 가지 못하는 고향을 어쩐 일인지 남편이 자주 가게 된다.
내 고향에 가니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요모조모 사진을 찍어와 보여준다.
몇 년 전 친정엄마 모시고 가족끼리 둘러보러 갔을 때 <나 살던 집>이라고 했더니
폐허가 된 집도 찍어 왔다. 저 뒤로 지붕만 빼꼼히 보인다.
저 집에서의 옛일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과꽃 모종을 받아와 장독대 옆에 심어 두고 보던 일,
추석 전 날, 할머니와 정지 뒷문 쪽에서 송편 빚다가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한 반 아이의 부친상인지 모친상인지 문상을 갔던 일,
똥통에 빠졌던 일,
몇 년 만에 엄마가 내려와 방 벽에 붙은 상장들 보고 두 다리 쭉 뻗고 앉아 대성통곡하던 일,
함께 왔던 동생의 트렌치코트가 너무 멋져 보여서 은근히 기죽었던 일,
친구들 앞에서는 서울내기 같은 동생이 은근 자랑스럽기도 하던 일......
저기 언덕 밑으로 보이는 집이 미자네일 것이다.
미자에겐 삼촌이 두 명 있었는데 중간에 낀 삼촌이 내게 그랬다.
"쟈는 이담에 크면 매력이 있어서 남자들이 꽤 따를 것이여."
순진무구하던 어린 나이에 들었던 그 말은 흘러가지 않고 뇌리에 남아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들을 보면 이따금 그 말이 떠오르곤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지금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이름처럼 부디 행복하게 요양하시길...
남편의 손가락이 찬조출연했다.
반도 지형인 고향은 어디서곤 곧잘 바다가 보였다.
툭 트인 바다가 아닌 올망졸망 섬들이 떠 있는 바다다.
내 고향 바다의 경치를 최고로 친다는 걸 스무 살 무렵 경포대 바다를 보고서 알았다.
경포대 바다 앞에 서서 나는 이렇게 멋없는 곳을 왜 그리 감탄해마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다 끝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바다가 시원함을 안겨주지 않고 허무함을 안겨줬다.
이게 뭐람.
조금나루.
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조금날>.
이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다.
가을이면 세발낙지축제를 한다고 해서 놀랐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빠져 있던 어린 날.
백조의 왕자들이 바구니를 물고 나타나 나를 담고서 멀리 날라다 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기도 했다.
나는 몰랐지만 좀 우울해 보이고 말이 없었다고 한다.
아내를 위해서 여기서도 찍고 저기서도 찍고.
감사해요.
두고두고 볼게요.
잊지 않고 저수지도 찍어왔어요.
저렇게 코딱지만 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아마 조금 메꾸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사진에서도 저 사진에서도 바다가 보여요.
용동에서도, 성동에서도, 유종동에서도, 낭개동에서도, 꽃회사에서도, 송현에서도 바다가 보여요.
참 신기한 지형이에요.
그렇게 살다가 중학교 때 도회지로 나와서 진하게 향수병을 앓았어요.
숨 막히는 도시의 집들이 싫었고,
두고 온 친구들이 보고 싶었고,
혼자 남겨진 할매도 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도 망아지처럼 너른 벌판을 맘껏 뛰어다니던 시간들이 너무 그리웠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요?
수시로 옥상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 보고요,
때로는 담요 뒤집어쓰고 몰래 울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리움이 달래지지 않는 날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우스운 건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에 고향에 산 건 고작 삼 년이고요.
그렇게 잠깐 왔다가 가버린 나를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윤초시의 손녀처럼
추억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는 거예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