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어제는 퍼머를 했습니다.
약간만 웨이브 있는 목 근처까지 내려오는 지금 머리도 좋은 거 같아 며칠을 망설이다
조금 단정하지 못한 느낌도 들어서 과감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가는 미용실은 남편과 함께 애용하는 미용실입니다.
삼십 대 초반의 미혼인 미용사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저도 그이를 좋게 보는 터인지라
저도 모르게 입가로 웃음이 번집니다. 퍼머용 붉은색 가운을 두르고 거울 앞에 앉습니다.
거울 속에 비추는 내 모습... 역시나 밝은 조명 아래 머리 물 축여 뒤로 젖혀 놓으니
커다란 얼굴에, 빠지지 못한 턱 선에, 눈에 확 띄는 피부의 탄력 없음에 그만 눈길을 떨굽니다.
"미용실에서 보는 얼굴은 왜 이리 이상하지? 참, 이상하게 생겼다."
미용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니, 예뻐 보이는 게 아니라요?"
"얼굴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놓아서 그런지 이상해요."
그 무슨 말씀... 그럼 조선시대에 가운데 가르마 타 서 단정하게 빗어넘겨
쪽진 여자들은 한결같이 추녀였더란 말인가요? 죄 없는 머리 탓만 하구 있습니다.
그 와중에 먼저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이 아는 척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요? 생각이 영 떠올라주질 않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이 우왕좌왕 바빠집니다.
그러다 퍼뜩 스치는 이름 하나.
"아, 아, 이제 알았어요. OOO이시죠?"
얼굴을 확 펴시며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미용사가 놀라며
"이름까지 알아요?"
"아, 성함을 꼭 물어봐야 되는 일이어서.... 저희 손님이셨거든요."
그 일을 끝낸 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저를 알아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머리가 다 말렸습니다.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고서는 머리에 스카프 두르고,
그분과 몇 마디 더 나누고 미용실을 나섭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미용실로 갔습니다.
그사이 손님들이 다 가고 미용사와 보조하는 아가씨만 남았습니다. 머리가 잘 나왔는지
확인한 다음 중화제 뿌리고 기다리는 동안, 또 이 얘기 저 얘기 나눕니다. 말 끝에
"참, 아까 그분요.서로 아신다는... 그분이 언니 보고 너무 인상이 좋대요. 언제 봐도 좋대요."
좋아서 입이 귀에 가 걸리는데 계속합니다.
"언니 장사해요. 상냥하고, 말도 잘 받아주고, 호감 가는 인상이고...... 정말 잘 할거 같아요."
사실 한두 번 듣는 말이 아닙니다. 지난번엔 남편이 친구와 함께 술 마시는 자리에
집사람들을 불러냈습니다. 먼저 도착한 저를 보더니
"어, 제수씨 얼굴은 천국인데 니 얼굴은 왜 그러냐?"
한마디 했다가 남편이 토라졌습니다. 인상 좋다는 말.
어쩌다 한 번씩 듣는 예쁘다는 말보다 훨씬 좋습니다.
왜냐면 인상 좋다는 말은 제 노력의 소산이고, 제 생활의 반영이니까요.
`아, 내가 잘 살고 있구나. 그래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들이 들게 합니다.
가슴속에서는 팥죽이 끓는 날에도, 한없이 한없이 가라앉는 날에도 저를 가다듬습니다.
`내 얼굴은 내가 만드는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