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생각들...
한 달 전 일산에 갔을 때 호수공원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공원 주변으로는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저곳은 전망이 좋아서 집값도 꽤 비싸겠다.
배롱나무들이 줄지어 선 곳을 지나는데 우습게도 배롱나무인 줄 몰라봤다. 아직 꽃을 달고 있지 않아서이고,
꽃을 달고 있지 않은 배롱나무를 눈여겨본 적이 없어서 매끄러운 수피가 낯익다는 생각을 무심히 하다가
가만 이 수피는 배롱나무, 간지럼나무,목백일홍의 수피가 아닌가, 하며 들여다보는데 마침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가 있어서 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모습을 다 봐야 그 나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
이 호수에서 진흙에 빠진 발을 씻었다. 어떻게 씻어?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했더니 남편이 함께 가준다고 해서
호수에 발 담그고 씻고나자 작은녀석이 그런다.
- 엄마, 지나가는 사람들이 막 쳐다봐.
하긴 씻고 돌아서자 어떤 아주머니 하나가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뭔 일로 호숫가에 쪼그려 앉아 있는가 궁금증이 들었는지
고개를 꺾어가면서까지 돌아보며 갔다. 슬몃 웃음이 나와서 웃는 얼굴로 남편을 바라봤다.
그래도 발이 깨끗해지자 한결 기분이 좋았다.
공원에는 나무 그늘에 돗자리 깔고 자는 사람, 먹는 사람, 담소하는 사람들과
삼각대까지 받쳐 놓고 수련과 연꽃을 찍는 사람 몇과
운동복 차림으로 열심히 걷는 사람, 몸에 딱 붙는 쫄반바지 차림으로 자전거 타는 사람,
긴 쫄바지 차림으로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중에 나도 저들 속에 섞여서 이 공원을 돌려나...
짧은 코스로 공원을 돌고 나오면서 보니 공원 주변의 가로수는 단풍나무와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르다.
단풍나무는 다섯에서 많게는 일곱 갈래로 깊게 갈라지지만 이 나무의 잎은 세 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또 쓸데없는 호기심이 살살 올라온다.
저게 무슨 나무일까? 네군도단풍? 당단풍?(당단풍은 잎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데...), 복자기나무?(복자기나무는 잎이 깊게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호기심은 신도시답게 중국집조차도 제법 깔끔한 데서 아이들 입맛에 맞춰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사그라들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서 검색을 시작한다. 고로쇠나무- 아니다. 복자기나무-아니다. 네군도단풍-아니다. 당단풍-
역시 아니다. 알아낼 수가 없다. 포기한다.
다른 방법으로 검색한다. 일산시목. 바보, 일산시가 아니라 고양시 일산구이다. 고양시의 시목은 백송이다.
다시 검색한다. 일산호수공원 앞의 가로수. 일산구의 가로수. 고양시의 가로수. 원하는 답이 뜨지 않는다.
그냥 무심히 일산호수공원의 나무들로 검색한다. 일산 호수공원에 심어진 나무들이 차례로 뜬다.
그러다 마지막에 그 앞의 가로수까지 뜬다. 원하는 답이 나왔다. <중국단풍>이다.
이 나무가 왜 그리 낯익나 했더니 뒷산 개울가에 커다랗게 두 그루가 있다. 남편과 그 나무 밑을 지나면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기어이 묻고 만다.
- 당신, 이 나무가 뭔 줄 알아?
생각이 많은님이 말씀하신 <능소화>를 빌리러 모처럼 책방에 들렀다. 없다.
간 김에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전경린의 <붉은 리본>이라는 산문집과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빌려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짠해지면서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붉은 리본>은 대개의 산문집들이 그렇듯이 작가의 생각과 생활을 수박 겉핥기 식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경린에 대해서는<밀회>라는 영화로 두 번쯤 보고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란 책으로
두 번 보아서 나도 모르게 작가에게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이 있었는지. <천사는 여기 머문다>에서나 <염소를 모는 여자>에서
평범하지 않은 여자일거란 생각을 가졌던가. 뜻밖으로 여리고 여린 감성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러니까 작가가 됐을 텐데. 당돌하며 당찬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던가...
내가 일 년여 동안 책방에 가지 않는 사이 주인이 바뀌었다. 전에 여자도 이뻤는데 새 주인도 이쁘다.
전에 여자는 나보다 한 살인가 어렸는데, 이번 여자는 너댓 살은 어릴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한참 어릴지도.
아직 엉덩이도 처지지 않았고, 탱탱하고 뽀얀 피부가 이제 갓 서른을 넘어섰거나 서른 중반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갖다주러 갔을 때 여자는 책꽂이의 먼지를 청소기로 꼼꼼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 소리에 묻혀 내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나 보다. 왜 돌아보지 않을까, 생각하며 가만히 뒤에 서 있는데,
어느 순간 나를 발견한 여자가 흠칫 놀란다.
- 아,깜짝이야!
미안해서 웃으며 묻는다.
- 오는 소리 못 들으셨어요?
<붉은 리본>은 남편과 밤마실 삼아 막걸리 마시러 나가며 갖다 주었다. 전에 책방 여자와 친할 적에 책방이 잘 되냐고 물으면
책 대여점과 비디오 대여점은 이제 사양길이라고 했다. 그런 줄만 알았다. 웬걸, 책방에 일고여덟 명이 이쪽저쪽에 서 있다.
남편도 전주인과 똑같은 말을 했던 터라 남편에게도 한마디 한다.
- 사양길이라더니 잘 되는구먼!
나는 뭐, 할만한 것 없을까? 어떤 일을 해야 될까? 어떻게 사는 게 보람 있을까?